성황당은 고려시대의 관리였던 설공검(薛公儉, 1224~1302)과 그의 부인을 모시던 신당으로, 관에서 인정한 읍치(邑治) 성황당이었다. 일제강점기 말에 성황당이 철거되면서 현판도 사라졌지만, 1992년에 옥천향토문화연구소가 순창설씨의 재각(齋閣)에서 찾아내어 세상에 알려졌다.
현판은 2개의 나무판을 위아래로 이어 붙여 하나로 만든 모습으로,크기는 가로 180㎝, 세로 54㎝이다. 지금까지 모두 73행 1676자가 판독되었지만, 글자의 흔적들이 더 확인되므로, 원래는 더 많은 글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판독문에 의하면, 현판은 1743년(영조 19)에 성황당을 다시 건립하면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성황신인 설공검을 소개하였고, 그 뒤에 고려시대에 성황신 내외에게 2차례에 걸쳐 작위를 내린 공문이 수록되었으며, 당시까지 성황당과 성황제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관련 인사들의 명단을 제시하였다. 1745년(영조 30)과 1823년(순조 23)에 다시 건립된 사실도 기재되어 있지만, 이것은 여백에 추기(追記)한 것이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의 순창장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지방의 읍치 성황당은 조선시대 지방 통치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만 관련된 사료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 현판의 발견으로 구체적 실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성황당 역사를 언급하고 있어서, 이 시기의 성황신앙 역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성황당 중건(重建)과 현판 제작에 관계한 인물들의 명단은 지방 제사와 지방세력의 관계를 구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울러 이두(吏讀)로 작성된 고려시대의 공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으므로, 고려시대의 공문서 양식이나 이두 이해에도 결정적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