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소 권30 ( )

불교
문헌
14세기 경, 목판에서 인출한 불교 논서 중 일부로 송나라 승려 정원이 80권본 『화엄경』 본문 아래 그에 해당하는 징관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를 편집한 책.
이칭
이칭
주화엄경소(注華嚴經疎)
문헌/고서
편찬 시기
11세기말
간행 시기
14세기경
저자
징관
편자
정원
권책수
1권 1첩
권수제
大方廣佛華嚴經疏
판본
목판본
표제
大方廣佛華嚴經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내용 요약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권30은 송나라 화엄학승인 정원(淨源, 1011~1088)이 80권본 『화엄경』의 본문을 나누고 그 아래에 80권본 『화엄경』에 대한 징관(澄觀, 738~839)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해당 부분을 실은 총 120권의 주석서 중 제 30권에 해당한다. 보물 제1124호이다.

정의
14세기 경, 목판에서 인출한 불교 논서 중 일부로 송나라 승려 정원이 80권본 『화엄경』 본문 아래 그에 해당하는 징관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를 편집한 책.
개설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권30은 보물 제1124호이다. 이 문헌은 송나라 화엄학승인 정원(淨源, 1011~1088)이 80권본 『화엄경(華嚴經)』의 본문을 나누고, 본문 아래에 80권본 『화엄경』에 대한 징관(澄觀, 주1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해당 부분을 실은 것으로 총 120권의 주석서 중 제 30권에 해당한다.

참고로 주본(周本) 『화엄경』이라고도 하는 80권본 『화엄경』은 당의 주2가 국호를 주(周)로 정했을 때 한역한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 주본 『화엄경』은 모두 80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80권본 『화엄경』 또는 『팔십화엄경』이라고도 한다. 이 『화엄경』은 418~420년에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주3가 번역한 진본(晉本) 『화엄경(華嚴經)』에 이어 새로 번역된 것이다. 이에 대한 주석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징관의 『대방광불화엄경소』이다.

의천은 송나라 유학 시절 화엄학의 대가인 정원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의천은 혜인원에 머무는 동안 정원이 엮은 『대방광불화엄경소』 1질 120권을 정원으로부터 직접 기증받았다. 이에 의천은 귀국 전 정원으로부터 받은 『대방광불화엄경소』 전질(全帙)의 판각을 주5의 각수 엄명(嚴明) 등에게 주문하였다. 1087년(선종 4) 3월 송나라 주6 서전(徐戩) 등을 통해 모두 2,900여 판에 이르는 목판이 고려에 전달되었다.

1424년(세종 6) 대장경판을 달라는 일본의 끈질긴 요청에 이 목판을 대신 주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목판들은 일본 교토 쇼코쿠사[相國寺]에 비치되었으나, 후에 화재로 전부 소실되었다. 따라서 이 목판은 불교를 통해 동양 3국이 문화적으로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68은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본 전체 목판(木板)을 14세기에 개성(開城)에서 인출(印出)한 것 중에서 권30을 1권 1첩(帖)의 주7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보물 주8 『대방광불화엄경소』 권28~30, 권100~102에 포함되어 있는 권30과 동일한 목판에서 인출된 것으로, 보물 제892호는 주9이다.

서지사항

『대방광불화엄경소』 권68은 절첩본(折帖本)으로 1권 1첩(帖)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식(版式)은 테두리마다 하나의 검은 선을 돌린 상하단변(上下單邊)이고, 본문은 검은 선이 있는 주10에 20행 15자,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되어 있다. 장(張)의 크기는 32.3㎝✕53.6㎝이며, 광고(匡高)는

권말(卷末)주11주12에 ‘정사년 백월산 남백사(丁巳年白月山南白寺)’라 기입되어 있어 책의 발행과 관련된 일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인쇄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책을 인출한 직후 불복장(佛腹藏)으로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쇄된 상태로 보아 주13으로 판단되며, 제본 상태로 보아 고려 말기 즉 14세기 경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른다. 『화엄경』의 중심 사상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不二]’라는 것이다. 이 경전은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의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의의 및 평가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에 갔을 때 정원(淨源)에게 요청하여 중국에서 판각(板刻)되었다. 1087년 경 고려에 수입된 『화엄경소』 120권 목판(木板)은 「주화엄경판(注華嚴經板)」으로 지칭된다. 1424년(세종 6) 일본이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주15의 목판을 달라고 조선에 요청하였을 때, 세종이 팔만대장경판 대신 이 주화엄경판을 일본 사신에게 주어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재조대장경판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싶어하였으나 유교 국가임에도 불교 문화재를 소중히 여겼던 조선은 고려대장경판을 일본으로 유출하지 않았다.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에서 판각된 「주화엄경판」은 고려시대에 잘 보존되어 전래되었으며, 조선 세종 때 선린 외교(善隣外交)의 차원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 목판은 한(韓) · 중(中) · 일(日) 삼국이 문화적으로 교류하였던 사례를 보여주며, 당시 삼국의 문화적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문화재보호협회, 『문화재대관-전적-』(1986)
천혜봉 · 박상국, 『동산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動産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문화재관리국, 1989·1991·1992)
남권희,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1994)

논문

김성주, 「『화엄경』 권제35의 성격과 명칭」(『국제언어문학』, 2007)

인터넷 자료

국가기록유산(www.memorykorea.go.kr)
문화재청(www.cha.go.kr)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주석
주1

중국 당나라의 승려(738~839). 속성은 하후(夏候). 존칭은 청량 대사(淸涼大師)ㆍ화엄 보살. 화엄종의 제4대조로, 법장(法藏)의 화엄 교학을 부흥하였다. 저서에 ≪화엄경소≫ 60권,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 90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중국 당나라 고종의 황후(624?~705). 성은 무(武). 이름은 조(曌).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제(女帝)로 고종을 대신하여 실권을 쥐고, 두 아들을 차례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성신 황제(聖神皇帝)라 칭하였다. 우리말샘

주3

중국에서 활약한 북인도 출신의 승려(359~429). 구마라습(鳩摩羅什), 혜원(慧遠), 법현(法顯) 등과 친교를 맺었고, 경전을 번역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였다. 한역(漢譯) ≪화엄경≫ 60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5

중국 저장성(浙江省) 북부 첸탕강(錢塘江) 어귀에 있는 도시. 남송의 도읍이었으며, 예로부터 무역항ㆍ경승지로 유명하다. 쌀ㆍ생사ㆍ차 따위의 집산지이다. 성도(省都)이다. ⇒규범 표기는 ‘항저우’이다. 우리말샘

주6

배를 팔고 사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7

두루마리식으로 길게 이은 종이를 옆으로 적당한 폭으로 병풍처럼 접고, 그 앞과 뒤에 따로 표지를 붙인, 책의 겉모양을 꾸미는 방법의 하나. 우리말샘

주8

권제28~30, 권제100~102

주9

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책장의 가운데를 접고 등 부분을 끈으로 튼튼하게 묶어 만든 책. 우리말샘

주10

검은 줄을 친 종이. 예전에 중국에서 염서(艷書)를 쓰는 데 썼다. 우리말샘

주11

책의 맨 끝. 우리말샘

주12

먹물로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주13

같은 판(版)에서 나중에 인쇄하여 낸 책. 우리말샘

주15

팔만대장경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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