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거란유종의 침입 당시의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19년(고종 6)
주요 관직
교위
관련 사건
거란유종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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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후기 거란유종의 침입 당시의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고종 초기 교위(校尉)로서 거란유종(契丹遺種, 僞遼國人)과의 전쟁에 참전해서 전공을 세웠다. 1219년(고종 6) 당시 최충헌(崔忠獻)은 거란유종을 격파하고 개선한 장군들의 전공을 시기해 영아례(迎迓禮: 고려시대 軍禮의 한 종류로 개선하는 장군을 맞이하는 군대 의식)도 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충헌이 직접 주관해 전공을 매기면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을 주지 않아 당시 출전한 장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하였다.

이에 손영은 함께 참전한 10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지난번에 거란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웠음에도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벼슬을 얻지 못했다”고 최충헌을 비난하였다. 술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최충헌에게 알리자 최충헌은 가병(家兵)을 보내 손영을 체포하고 손영의 일당 100여명과 함께 개경 보정문(保定門) 밖에서 참수하였다. 손영의 죽음에 낭장(郎將) 기인보(奇仁甫) 등은 위협을 받고 최충헌의 암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최충헌 정권 연구」(김대중,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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