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득평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찰사, 민부의랑, 선부전서 상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라도 안찰사|민부의랑|선부전서 상호군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전라북도 전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남인국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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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찰사, 민부의랑, 선부전서 상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좌우위 중낭장(左右衛中郎將) 최정신(崔正臣)이다. 봉익대부(奉翊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감찰대부(監察大夫) 문한학사승지(文翰學士承旨) 세자원빈(世子元賓) 곽예(郭預)의 딸과 혼인하여 1303년(충렬왕 29) 아들 최재(崔宰)를 낳았다. 최재는 대광(大匡)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성품이 청렴(淸廉)하고 공정함을 스스로 지켰으므로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 세 임금을 두루 섬겼는데 충선왕이 최득평을 그릇으로 여겨 더욱 중하게 대하였다. 최득평이 대관(臺官: 관리를 감찰하는 관리)에 있으면 기강이 섰고, 형부(刑部)에 있으면 형벌이 간결해졌다고 한다. 김해(金海)·상주(尙州)의 수령과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를 역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 2월 지밀직사(知密直事) 채홍철(蔡洪哲)을 오도순방계정사(五道巡訪計定使)로 삼아 양전(量田)을 하고 부세를 정할 때 최득평은 민부의랑(民部議郞)으로 판관(判官)이 되어 참여한 바 있다. 벼슬은 통헌대부(通憲大父)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역주『고려사』식화지』(권영국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 - 「최재묘지명」(김용선,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6)

  • - 「부록: 〈별표 1〉 고려후기 세족가문의 세계도 13 전주최씨」(김광철, 『고려후기 세족층연구』, 동아대출판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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