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예빈성 낭중, 상서예부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경전과 역사에 널리 통달하고 문장을 잘 지어 임금을 보좌하였는데, 성종 때에는 상서예부시랑(尙書禮部侍郞)이 되었다. 998년(목종 1)에 65세로 사망하자 바로 그 해에 오관산(五冠山)에 장례를 지냈으며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다. 1009년(현종 즉위년)에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사후 26년이 지난 1024년(현종 15)에 개성 법운산(法雲山)의 동쪽 기슭에 개장하면서 묘지명(墓誌銘)을 만들었다.
채인범은 처음 청하군대부인 최씨(淸河郡大夫人 崔氏)와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낳았는데 부인은 남편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다시 청주군군 장씨(淸州郡君 張氏)와 재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첫 부인이 낳은 아들은 현종 때 관직이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감수국사(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監修國史)에 올랐는데, 현종 때의 재상인 채충순(蔡忠順)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인범묘지명 지석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고려 묘지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써 역사적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김용선,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고려시대 중앙문화와 지방문화의 차별성: 묘지명을 중심으로」(김용선, 『고려금석문연구』, 일조각, 200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