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83면, 문학과지성사에서 1980년에 발간되었다.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다음 10년 만에 펴낸 이하석의 첫 시집이다. 서문은 없고, ‘뒤쪽 풍경’과 ‘투명한 얼굴들’의 2부로 나뉘어, 「투명한 속」, 「부서진 활주로」, 「눈물 한 방울 또는 물방울 같은 것」 , 「폐차장」 등 50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김현의 해설 ‘녹슴과 끌어당김’이 실려 있다.
이하석은 1948년경북 고령 출생으로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다음 1971년 『현대시학』에 전봉건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투명한 속』은 등단 10년 만에 펴낸 저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러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칠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투명한 속」 부분)에서 보이듯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현실을 상징하는 이미저리 구축을 통해 독자들에게서 호소하고 있다. ‘먼지와 녹물’, ‘쇠 조각’,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등의 시어는 비인간화된 산업화 과정의 풍경을 이미저리로 구축해 보여주는 것으로 유추된다.
최동호의 지적처럼 이 시는 “이 시는 현대문명의 왜곡된 발전이 낳은 폐해(弊害)로 가득찬 오늘의 현실에서 무엇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그 결과 시인이 발견한 것은 "투명한 속'이다. 시인의 성찰은 바깥에 드러난 "겉'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속'을 향해 열려 있다.
시의 1연을 보면, 문명의 파편인 유리 부스러기가 먼지와 녹물로 얼룩지고 쇳조각들 굴러다니는 오염된 땅에 함께 버려져 있다. 그런데 유리 부스러기는 먼지, 녹물, 쇳조각 등의 오염물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다. 투명한 속성을 지닌 그것은 다른 사물을 제 몸에 비추어낼 수 있다. 때문에 시인은 유리 부스러기를 문명의 잔재로 치부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수 있는 속을 가진 사물로 본다.” 시인은 문명의 파편인 유리 부스러기 속에 제비꽃의 투명한 속이 비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담아내고 꽃피우는 문명의 가능성을, 그러한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하석은 김춘수의 계보를 이어받는 모더니스트이면서도 가장 반항적인 계승자라고 볼 수 있다. 김춘수의 시가 사회 역사로부터 벽을 쌓으면서 구축된 순수라면, 이하석의 시는 적극적인 현실 탐구와 진실 찾기에서 비롯된 순수라는 점이 특색이다. 그는 순수와 참여를 동시에 수용한 색다른 모더니스트이다. 그 자신 현실을 읽는 것이 오늘의 문학이라고 말하면서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투명한 속』을 통해 그가 구축해 보이는 시세계는 감정을 진술하지 않고 이미지 중심의 보여주는 시로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규정짓는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지성을 견지하면서도, 감정의 토로에서 벗어나 논리적인 시적 구조를 구축해 나간다는 시적 개성을 보여준다. 투명한 속은 그 같은 이하석 시업의 초기 결산이다.
시집 『투명한 속』은 강인한 금속성의 이미지와 황량한 대지적 공간과의 결합을 통해 그의 시들은 약소민족의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삶의 슬픔을 노래하면서 우리의 땅이 풍요해지기를 가열한 의지로써 호소한다. 이러한 슬픔과 의지의 격렬한 성과인 이 시집은 우리의 80년대적 서정에 한 뛰어난 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