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221면. 1978년 어문각(語文閣)에서 발행하였다. 「일곡(一曲)」에서 「구곡(九曲)」에 이르는 아홉 편의 연작 장시들이 수록된 시집이다.
192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금강산 마하연에서 불교와 한학을 접했다. 1949년김동리의 추천으로 시 「산중야(山中夜)」, 「백탑송(白塔頌)」을 『신천지』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그는 『시』, 『구곡(九曲)』, 『송(頌) 백팔(百八)』 등의 시집을 냈다. 김구용의 쓴 최초의 장시집 『구곡(九曲)』은 1978년 초판이 출간되었고, 2000년 6월 ‘솔 출판사’에서 『김구용 문학전집 제2권-구곡』으로 재출간되었다.
동서양의 정신적 차별은 물론 주객(主客)의 있고 없음의 나뉨조차 넘어서 근원적 자유로움과 궁극적인 원융의 경지를 보여주는 시인 김구용의 첫 연작 장시이다. 천변만화하는 자아를 탐색함으로써 참 자아를 찾아가는 지난한 구도의 과정을 노래한 연작 작품집이다. 『구곡』은 전반적으로 자유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 연이 대부분 십여 행을 넘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시』의 시들과 변별점을 보여준다. 『구곡』은 제목 자체가 ‘노래’를 상징하고 있다. 시집 『시』와 『구곡』은 창작시기가 겹치는 점이 있으나 『구곡』은 1960년대 김구용 시의 특질을 대표한다 하겠다. 『구곡』은 1961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후 1970년대에 공백기 끝에 1977년 연재를 마친 작품이다. 1960년대 김구용 시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구곡』은 『시』와 『송 백팔』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산문성으로부터 서정성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구곡』을 비롯한 그 이후의 시들은 모두 연재를 거친 연작시의 형태로서, 공통적으로 시제(詩題)가 수와 합하고 있으며, 각 시편은 무제인 일련번호로 되어 있다.『구곡』으로부터 그 이후의 시들은 모두 연작장시로 명명된다.
“해와 달이 없는 석탑(石塔),// 돌(石)은 스스로 일월(日·月)이다.// (중략) //가을이면 계시(啓示)한다.// 그러면, 탑과 나무는 다르지 않다.”(-『구곡』-6곡 부분)에서 보이듯, 불교적 정서를 담지하고 있으면서도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의미를 유추할 수 없는 시편이다. 김구용이 숫자 9를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면 『구곡』이 뜻하는 ‘아홉의 노래’는 완성적 세계를 향해 나아가면서 하나의 여백을 남겨놓는 미완성 교향곡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곡』의 대주제는 ‘진리로서의 노래에 대한 탐색’이며 그 바탕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불교와 관련된 시어들이 직접적으로 지칭되기도 하려니와 난해한 시어의 상당부분이 불교적 상징과 연관을 맺기 때문이다. 화자에게 있어 노래는 곧 화두이다. 화두는 진리에 이르는 일종의 문門이고 방법이다. 그러므로 화두 자체가 일종의 상징으로서 하나의 이미지로 표출되며, 복수의 내포를 거느리고 있다. 이 복수의 내포는 무한대의 의미망을 가진다.
이 시집은 김구용의 모더니즘과 동양 정신이 결합된 시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집으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난해성의 시’로 분석의 대상에 제외돼 문학적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해왔던 김구용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있다. 김구용은 평론가들로부터 발레리의 「바리에테」의 한 번역문을 읽는 느낌을 주는 김구용의 시에서 현대인의 자의식의 도저(到底)를 구명(究明)하려는 강인한 노력을 엿볼 수 있거니와 이러한 강인성이 아슬아슬한 선에서 시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 같은 실험 정신과 동양 정신이 결합된 시세계가 집약된 것이 바로 이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