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 190면, 양장본. 1966년 정음사(正音社)에서 발간한 성찬경의 첫 번째 시집이다. ‘화형둔주곡’, ‘밀핵(密核)’의 2부로 나뉘어 「SCHOENE SEELE」, 「미열(微熱)」 , 「어느 시경(詩境)」, 「궁(宮)」, 「프리즘」, 「젖은 관념(觀念)」 등 6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시인이 쓴 ‘후기(後記)’와 ‘시작연표’가 붙어 있다.
1930년 충남 예산 출생. 1956년『문학예술』지에 조지훈 추천으로 등단. 시집 『화형둔주곡』『벌레소리 송(頌)』『시간음(吟)』『반투명』『묵극』 등을 펴냈으며, 한국시협상, 서울시문화상, 월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가톨릭문인협회장 등 역임한 후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화형둔주곡」은 성찬경의 첫 번째 시집이다.
시어의 비약과 생경한 이미지의 사용으로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특유의 개성 있는 언어 표현이 주목되는 시풍이 주조를 이룬 시집이다.
한국전쟁 이후 새로 재편된 한국시단의 흐름을 전통파·중도파·실험파의 셋으로 분류할 때, 성찬경은 실험파에 속하는 시인이다. 실험파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를 쓰겠다는 의욕과 그 방법론적 자각의 투철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찬경은 피상적 장치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실을 잃은 말장난에 떨어질 위험을 경계하면서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잃지 않는 시세계를 견지하고 있다는 데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한 시인이다.
처녀시집 『화형둔주곡(火刑遁走曲)』(1966년)은 공상과 환상과 지적 건축의 구조 미학을 노래한 시집이다.
성찬경은 여타의 전통적 서정시인들과는 달리 ‘추상성’과 ‘상징성’을 시적 성립의 주요 요인으로 들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작업이 직정(直情)의 토로보다 언어의 배후에 숨은 이미지와 언어 미학의 추구에 기울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성찬경의 『화형둔주곡』은 한국전쟁 후 한국시단에서 언어의 자율적 사용을 주된 기법으로 한 실험 정신이 체현된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초현실주의에 근접한 서구적 기법을 보여주면서도, 그 정신의 기저에는 동양정신이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김수복에 따르면 성찬경은 “언어의 창조적 기능과 정신의 육화된 틀로서의 언어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언어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생명의 육화로서의 시어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시집은 이 같은 정서가 잘 체현된 작품집이다. 동서고금을 마음대로 주름잡고 있다고 할까. 철저하게 현대적이고자 하는 치열한 시의식에 더하기 고전적 감각의 소유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