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이라는 용어가 신문지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다. 고시촌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공부방 및 거주 용도로 사용하던 고시원이 밀집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대학가 주변, 하숙집 밀집지역에서 고시생들이 증가하면서 고시전용 대규모 공부방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이러한 독서실과 하숙집의 중간형태의 시설들이 고시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고시촌인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은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고시생들의 밀집 거주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1980년대 초부터 관악산 기슭의 여러 하숙집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 지역에 대한 명성이 각지로 퍼져 나갔고 점차 타지역의 고시생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고시 전문학원과 고시 전문서점들이 대학동 주변에 생겨나자 많은 고시원들이 신축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법시험뿐만 아니라 5급 공무원 공채시험, 공인회계사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존 주택이 헐리고 고시생을 위한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식 고시원이 신축되었고, 상권 또한 고시생들을 상대로 하는 업종으로 전환되었다. 1999년 당시 대학동 전체 주민수는 2만 6000명이었는데, 이중 서울대 하숙생 및 고시생이 1만 5000명에 달했으며 고시 관련 시설을 이용하는 외부 유입인구까지 합하면 고시촌 전체의 유동인구는 4만여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2017년 사법시험 폐지계획이 발표되면서 고시촌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고시원의 공실률이 늘어나고 있다. 대신 고시촌에는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들이 유입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고시원 방 2∼3개를 합쳐 원룸으로 개조하는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 또한 노량진의 고시촌이 관악구 대학동을 제치고 대표적인 고시촌으로 부상하고 있다. 노량진은 7·9급 공무원 및 경찰시험, 임용고시 등과 관련된 학원들이 밀집한 곳으로, 국가고시의 축소와 더불어 유례없는 취업난의 영향으로 수험생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영등포 등 도심에 분포한 소규모 고시촌들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수험생이 아닌 일반인들의 거주지로 변모하였다. 도심지에 산재한 고시원은 젊은 독신 직장인들의 일시적 주거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단순노무직 등에 종사하는 빈곤계층의 저렴한 주거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시원은 고시촌이라는 특정 공간을 벗어나 지하철역 인근과 주택가 등 다양한 곳에서 저렴하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숙박업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