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김환기(金煥基)와 길진섭(吉鎭燮), 일본인 츠루미 다케나가(鶴見武長), 간노 유이코(管能由爲), 후나코시 미에코(船越三技子)가 조직한 단체.
도고 세이지(東鄕靑兒), 아베 곤고(阿部金剛), 고가 하루에(古賀春江), 후지타 쓰구지(藤田嗣治) 등이 1933년 개설한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가 문을 닫자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 연구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 중 하나이다. 백만회(白蠻會) 회원들은 관전(官展)을 외면하고, 유럽에서 들어온 새로운 미술양식을 추구한 전위적(前衛的)인 재야 미술단체이다. 작은 규모의 동인회이지만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쳤다.
1936년 동경 긴자(銀座)에 있는 기노구니야(紀伊國屋) 화랑에서 제1회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같은 해 제2회 전람회와 제3회 전람회를 연이어 개최했다. 1937년 11월에는 흑색(黑色)양화전그룹, 신현실(新現實)그룹과 같은 시기에 전시회를 개최하는 동시전(同時展)을 열었다.
제2회 전람회(1936)에는 길진섭이 「두 여인」과 「어선」을, 제3회 전람회(1936)에는 김환기가 「동방(東方)」을, 길진섭은 「형매(兄妹)」를 출품했다. 김환기의 「동방(東方)」은 장독대가 있는 풍경을 평면화하여 화면의 조형적 질서를 추구한 작품이며, 길진섭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친 선과 넓은 색면을 이용해 감성을 표현하였다.
길진섭과 김환기의 작품경향은 달랐지만, 당시 만연해 있던 아카데미즘 양식을 벗어나 유럽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진취적인 미술양식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환기와 길진섭은 귀국 후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