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초춘」, 「풍경」, 「언덕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생애
활동사항
1927년부터는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대구지역 예술단체인 영과회(零科會)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대구지역 순수미술단체인 향토회(鄕土會)의 창립회원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박명조는 야외 풍경화를 주로 제작하였으며,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도 모두 야외풍경화이다. 그 외 정물화와 인물화도 제작하였다. 박명조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는데 맑고 투명한 수채화 기법을 사용하여 아카데믹한 자연주의 화풍을 구사하였다.
한편 대성학교, 오산학교, 대구상업중학교, 대륜중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미술교육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경상북도 지방서기, 대구일보사 지방부장, 키네마 극장 선전 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조선미술전람회도록(朝鮮美術展覽會圖錄)』(경성: 조선사진통신사, 1926∼1935)
- 『근대를 보는 눈-다시 찾은 근대미술』(삶과 꿈, 1999)
- 『근대를 보는 눈-유화』(삶과 꿈, 1997)
- 「대구화단의 서양화 수용 전개에 관한 연구」(김태곤, 영남대 석사학위논문, 2004)
- 「향토회와 대구화단」(윤범모, 『한국근대미술사학』제4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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