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진남포시 비석동 5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북한에서 문석오에게 조각을 배웠다. 6.25전쟁 때 월남하였으며 서라벌예술대학 강사, 청암조각연구소 대표, 천도교미술인회 회장을 하였다.
6.25전쟁이 시작한 1950년쯤 3대 독자로서 단신 월남하였다. 조각가였던 문석오는 문정화가 자신과 같은 성씨인 데다가 솜씨가 매우 좋다고 칭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문정화는 1932년 이후 평양과 해주에서 작품을 제작하였고, 1945년부터 1946년까지는 해주도자기공장에서 일하다가 이후부터 1953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에서 조각을 책임지고 있었다.
1953년 종군화가로 국방부가 주관한 제6회 종군화가단 전람회에서 「돌격」으로 정훈국장상을 받았다. 사실주의적인 묘사력이 뛰어난 그는 1951년 육군본부 위촉으로 밴플리트 장군에게 증정하는 부조를 제작한 이후 50여 년 동안 동상과 기념조각, 개인의 기념 흉상 등을 상당히 많이 제작하였다.
1956년에는 파고다공원에 설립된 양복 입은 모습의 「이승만 대통령동상」을 제작하였다. 1957년 육군사관학교 상징인 방패용 부조를 제작하였고, 1958년에 강원도 춘천에 「충렬탑」을 제작하였다. 1966년에는 파고다공원에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을 제작하여 건립하였고, 1966년에는 강원도에 「남궁억 선생 동상」을 제작하였다. 1970년에는 애국선열조상인 「퇴계 이황 선생상」을 제작하였다. 이 동상에 대해 “나로서는 퇴계 선생의 빛나는 업적과 숭고한 정신을 이 동상에 모두 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혹시 이 어른의 모습을 잘못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송구스런 마음은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1971년에 「박정희대통령 초상」, 중앙대학교 「파이퍼 여사 초상」을, 1976년에는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탑」을 제작하였고 1979년에 경주에 「최시형 선생 동상」을 제작하였다. 1980년에는 「율곡 선생 동상」을, 1981년에는 「충무공 동상」을 인천에 세웠다. 이후로도 「공자 동상」(1984, 제주향교), 「최제우 동상」(1988, 경주),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 좌상」(1990), 「손병희 동상」(1994, 청원) 등을 제작하였다.
기타 기념물로는 1959년 서울농대 마크인 청룡부조를 제작하였고, 1960년 시민회관이 된 우남기념관의 「십장생」과 「춘하추동」 부조 14점을 제작하였다. 1976년 제주시 「모충사 의병항쟁 기념탑」, 1976년 「의녀 김만덕 의인 묘탑」, 1980년 「하멜기념비」, 1968년에는 중앙대학교 상징인 청룡상을, 1969년에는 정문 시계탑을 제작하였다. 또한 국립국악원 외부 철제 장식,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 롯데호텔, 인천대학 등 여러 건물의 외부 장식이나 부조작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