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국전 추천작가, 서예부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서화가.
활동사항
1938년 허백련이 광주에 전통 서화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연진회(鍊眞會)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전(素筌)손재형(孫在馨) 같은 유명 서화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택에서 5년 동안 매일 팔백 자씩 글씨를 쓰면서 개성적 필법을 완성하였다. 특히 그는 조맹부(趙孟頫)의 송설체(松雪體)에 근간을 둔 단아한 행서에 뛰어났으며, 사군자 중에서는 매화가 일품(逸品)이었다.
1956년 제5회 국전 서예․사군자에 출품한 「묵죽」을 시작으로 연속 4회 특선을 하면서 1960년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고, 이후 서예부의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을 7회 역임하였다. 1975년한국예술원 원로작가에 추대되었고, 1978년 고 허백련의 유지에 따라 설립된 연진회미술원의 초대 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곳은 광주농업기술학교를 바꾸어 1978년 2월 10월 개원한 미술교육기관으로 보통과와 전문과로 나누어 사군자와 습자는 물론 국어, 국사, 기초 한문 등의 교양과목도 가르쳤다. 더불어 전라남도 미술대전, 무등미술대전 등 공모전의 심사 또는 운영위원으로 광주 화단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밖에 1964년신세계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렸으며, 1973년 ‘원로작가 초대전’을 비롯해 1979년 열린 ‘아주현대서화명가전(亞洲現代書畵名家展)’, 1982년 국전(國展)이 폐지되고 처음 열리는 ‘82 현대미술초대전’, 1985년 ‘현대미술 40년전’, 1988년 올림픽을 기념해 개최된 ‘국제현대서예전’, 1990년 ‘한국서예 국전 30년전’ 등 국내외의 주요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현재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 경내의 삼성각(三聖閣) 편액과 허백련 묘비는 그의 글씨이며, 다수의 글씨와 사군자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한국미술사 사전 1945-1961』(최열, 열화당, 2006)
- 『동아일보』(1979. 6. 19, 1985. 10. 30)
- 『매일경제』(1978. 2. 8, 1981. 3. 27, 1983. 1. 20, 198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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