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미인침선」·「야인효행」 등을 그린 화가.
활동사항
하지만 현재 전하는 그의 산수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독특한 소미점(小米點)에서는 아버지 지운영의 영향도 엿보인다. 또한 『조선일보』에서 1924년 11월부터 독자들의 투고 만화를 선정 소개하는 ‘철필사진’이란 고정란에 그의 만화 「쥐띠와 개띠의 대화」가 처음 당선된 것에서도 예술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1927년 1월 3일 『동아일보』에 그의 토끼 그림이 실렸으며, 같은 해 열린 제7회 서화협회전에도 출품하였다. 일제의 식민탄압이 심해지자 붓을 내려놓고 이름을 이대창(李大昌)이라 바꾸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을 숨기지 못했던 듯 1935년 제14회와 1936년 제15회 서화협회전에 출품하였고, 1938년 제18회부터 1940년 제20회까지 조선미술전람회의 공예부에 3년 연속 입선하는 특이한 이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무렵 가회동에 경성칠공소(京城漆工所)를 개설해 동인들과 활동하였으며, 나전칠기 분야의 전승자였던 김봉룡(金奉龍)도 동인으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11월 열린 제1회 조선미술가협회 전람회에 「정유원(庭遊園)」을 출품하였으며, 공주에서의 광산 개발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1977년 3월 신문회관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음해에는 미도파백화점에서 팔순기념 초대전이 열렸다. 현전작품에는 「산수도」(서울역사박물관), 「추강어은도(秋江漁隱圖)」와 「화조도」(고려대학교박물관)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한국미술사 사전 1800-1945』(최열, 열화당, 1998)
- 『서화백년』(김은호, 중앙일보사, 1981)
- 『춘초지성채옹팔순기념초대전』(미도파백화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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