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
활동사항
1913년 윤영기(尹永基)가 평양에 개설한 서화가 단체인 기성서화미술회(箕城書畵美術會)에 김윤보(金允輔), 노원상(盧元相) 등과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8년 결성된 서화협회의 정회원으로 중앙 화단과도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였고, 1919년 12월 김규진의 서화연구회 전람회와 1920년 2월 인천상업회의소에서 개최된 김우범(金禹範) 서화회에 참석하여 휘호하는 등 창작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20년 3월 후쿠오카(福岡) 공업박람회에서 휘호하기 위해 출발하였으며, 1921년 7월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書畵指南所)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정치 사회적 변화에 따른 서화가로서의 한계를 느꼈는지 카네코 요시타로우(金子吉太郞)로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1921년 설립된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南畵初段格)』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1921년 12월 7일 인천 영화(永華)학교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다음 관민유지 초청으로 용금루(湧金樓)에서 휘호회를 가졌고, 1922년에는 개성 제1보통학교에서 황성하(黃成河)․황용하(黃庸河)와 함께 개성서화회전을 열었다.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서부의 「후출사표(後出師表)」를 시작으로 1924년 제3회 서부에 「전적벽부」, 제9회 동양화부에 「모란」, 제10회 서부에 「임탄은죽(臨灘隱竹)」이 입선하였다. 이밖에 1935년 1월 27일 의주, 1936년 5월 강동, 1936년 7월 백선행회관(白善行會館)에서 개인 서화전을 개최할 정도로 6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현전 작품에는 합작으로 그린 「화조사군자」 12폭 병풍(1917, 통도사성보박물관), 「조안도(鳥雁圖)」(1920년대, 홍익대학교박물관), 다수의 사군자가 있다.
참고문헌
- 『황성신문』(1906.12.08, 1907.7.10, 1907.12.14)
- 『매일신보』(1920.3.5, 1936.7.24)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한국미술사 사전 1800-1945』(최열, 열화당, 1998)
- 「20세기 초, 한국 서화가의 존재 방식과 양상: 수암 김유탁을 중심으로」(이성혜, 『한문학보』21, 2009)
- 「개화의 요람 평양화단의 반세기」(김복기, 『계간미술』 1987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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