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주, 김복진이 중심이 되어 신문과 잡지에 만화를 게재함으로써 대중적 선전매체로 부상하는 만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케 하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결집을 도모한 단체이다.
1925년 1월 안석주는 『어린이』 3월호에 6칸짜리 아동만화 「씨동이의 말타기」를 발표하였다. 안석주의 만화발표를 계기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중에 대한 교육과 교화의 도구로서 만화의 적절성을 인식한 김복진과 안석주가 주동이 되어 1925년 5월에 이 단체를 결성하였다. 이때 삽화작업을 하고 있던 이승만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5년 2월 『매일신보』에 시사와 풍자해학 만화가를 찾는 현상모집이 시작되는 등 당시 만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던 때였다. 1925년 8월 24일 프로예맹 창립총회가 열렸고 안석주와 김복진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프로예맹의 6인의 중앙위원 중 김복진은 규칙과 강령 초안을 잡는 등 프로예맹에서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만화가구락부는 유명무실해지거나 발전적 해체를 도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만화가구락부는 만화가 중요한 시각미술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당시에 대중적 함의를 얻은 만화가 결집의 형태로 나타난 최초의 단체이다. 또한 프로예맹 미술인의 최초 결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