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1년 이후로 개최된 여성 명창들만의 예술공연. 국악공연.
개설
연원 및 변천
행사내용
의의와 평가
여류명창대회를 계기로 기생은 여류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갖게 되었다. 여류명창대회에 참여했던 김초향은 1934년 남도가무 전문집단인 조선성악연구소의 창립자 중 하나였고, 박녹주는 조선성악연구회의 지도부에 속했음은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재경 남도가무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며, 창극의 쇠퇴기에 여성국극의 시초를 만들었다. 이러한 점 등에서 여류명창대회는 특정 공연기획물을 넘어서는 공연예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참고문헌
- 『한국근대음악사회사』(권도희, 민속원, 2012)
- 「20세기 기생의 가무와 조직」(권도희, 『한국음악연구』45집, 2009)
- 「기생조직 해체 이후 여성음악가들의 활동」 (권도희,『동양음악』25, 2003)
- 「20세기 기생의 음악사회사적 연구」 (권도희,『한국음악연구』29, 200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