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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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이후 통일운동을 위해 대학생들이 결성하고자 한 조직.
이칭
이칭
민통련, 민통전학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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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0년 4·19 혁명 이후 통일운동을 위해 대학생들이 결성하고자 한 조직.
내용

1960년 4·19 혁명은 대학가의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학생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구분되었는데 하나는 국민계몽대와 같은 생활개선운동이었고 다른 하나가 통일운동이었다. 전자는 정치적 색채가 제거된 계몽운동 차원이었다면 후자는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뚜렷한 운동이었다.

대학생들의 통일운동은 혁신세력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영향을 확대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발이 된 것이 1960년 11월 1일 발기대회를 가진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대학가에 민족통일연맹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했으며 경북고등학교에까지 파급될 정도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61년 5월 5일 전국 17개 대학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준비대회’가 개최되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이 발발함으로써 조직 결성이 이루어지지는 못했고 관련자들은 이후 체포되어 15년에 달하는 실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결성준비대회 선언문은 “세계사적 현단계의 기본적 특징은 식민지·반식민지의 민족해방투쟁의 승리”라고 규정하고, “식민지적·반식민지적 반봉건성의 요소”를 척결하고 “민족·대중세력은 매판관료세력을, 통일세력은 반통일 세력을, 평화세력은 전쟁세력을 압도”하여 통일을 실현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실천방안으로는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했고, 유명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슬로건이 제출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문제제기였으며 4·19 혁명 이후 급진 민족주의가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민주화 운동 일지: 1960.4.26-1961.5.16』(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2)
『4월혁명과 한국민주주의』(정근식·이호룡, 선인, 2010)
『한국사회변혁운동과 4월혁명』1·2 (사월혁명연구소, 한길사, 1990)
집필자
황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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