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재미한인들이 동포의 단합과 재정마련을 위하여 설립·운영한 실업주식회사이다. 설립목적은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대한 남녀 동포가 크게 합동하여 거대한 자본을 세워 농·상·공간의 가합한 것을 따라 실시하야 실업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재미 한인들은 한국의 장래와 한인 개개인의 전도를 돌아볼 때 실업을 일으키는 일이 우선한다고 보았다. 재정적 실력이 없었던 한인들이 자본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실업회사로 발전시켜 나라 독립에 기여한다는 대의를 품고 설립하였다. 3.1운동 이후, 북미실업주식회사는 대한인국민회의 국민적 의무를 지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령 받들기를 자청하는 등 재미한인 공공의 주식회사임을 자처하였다.
북미실업주식회사는 1912년 1월 김인수, 송종익, 김종혁, 조성환, 김기만, 정원도, 임준기, 손양선, 강번, 안창호를 발기인으로 하여 출범하였다. 자본금 총액 45,000달러로, 매주 300달러로 150주로 예정하고 3년으로 분배해 주식 모집에 들어갔다. 1918년 당시는 자본 총액 5만달러, 매주 10달러 5천주로 하여 주식을 모금하였다. 당초 북미 전역만이 아니라 장차 세계에 산재한 동포사회를 영업 범위로 함을 목표로 하고 흥업사(興業社)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자본금이 10만달러에 달하는 때에 회사를 중국으로 이전하여 달러 가치가 동양화(중국돈) 20만원에 달하면 이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을 설치하고 한·중 두나라의 민간자본을 모집해 은행을 설립하려던 계획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영업범위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한정되고 그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로스엔젤레스 흥사단 본부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주주로 참가한 이들 대부분이 흥사단원들과 대한인국민회원들이었다. 회사가 번성할 당시 1917년 무렵 회사 임원진은 사장 임준기, 총무 송종익, 재무 정봉규, 이사원 정봉규·임준기·송종익, 감사원 조성환·계옥룡 등이었다. 1918년 멕시코를 방문한 안창호에 의해 멕시코 한인들이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주주를 사들여 1919년 당시 미주와 멕시코의 동포 255명이 주주가 되었다. 그러나 1920년 대홍수가 휩쓸어 한인 농업이 크게 손실을 보면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수천달러를 들여 귤밭을 임대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여기에 소송에 휘말리면서 법정 소송 비용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회사는 위기에 빠져 동포사회의 외면을 받았다. 흥사단의 주도로 회사를 살려보려는 노력이 경주되었지만 악화된 재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1929년 11월 주주에게 1주당 15센트씩 배당한 후 해산하고 말았다.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주식금은 주로 한인 농업에 투자되었다. 투자 영업 이익 분배는 회사 이사부에서 감사원의 검정을 거쳐 시행하였다. 회사 운영에 대한 일체의 사항은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 보고되었고 재정 출납 사항을 신한민보에 게재하였다.
1919년 3월 당시 자본총액은 8만달러, 총자본 2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멕시코의 농업과 상업에도 투자하고자 시장 조사를 했으며 회사의 순이익금 3천원을 지출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21예금(二十一例金)을 납부하고, 임시정부 국채를 매수하기도 하였다. 일본 상품 배척운동과 함께 미주사회에서 상업상의 이익이 한인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상호 실업 장려와 경제적 실력 양성을 목표로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설립이래 회사운영은 순조로왔으나 1920년도 추수를 앞두고 윌로우스 일대에 대홍수 사태가 휩쓸고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가 일어나면서 북미실업주식회사는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1920년 4월 29일, 상하이 구국모험단이 폭탄 실험 도중에 일어난 폭발로 프랑스 조계 경관이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미주에서 보내온 1만달러가 치료비와 손해배상금을 지불하고 사건을 수습한 바 있는데, 1만달러의 출처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 이 자금이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자본금에서 나왔다고 하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북미실업주식회사는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한편 북미실업주식회사는 윌로우스 벼농사에 3만달러, 콩재배 농사에 1,500달러를 투자했다가 농작실패로 인해 대여금을 상환받지 못해 재정적으로 압박받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이 여러 해를 끌다가 기각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북미실업주식회사는 큰 손해를 입었고 회사 자금은 15%로 축소되어 버렸으며 끝내 재정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북미실업주식회사는 짧은 기간 존속했으나 재미한인사회에 실업운동을 일으켜 민족기업을 키우고 한인들의 경제 실력을 키우고자 하였다. 북미실업주식회사의 투자로 많은 한인들이 실업활동의 경험을 쌓았고 경제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