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린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7년 4월 1일
  • 출생 연도1912년 10월 5일
  • 출생지함경북도 화대군 자가리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권오국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내용

1912년 10월 5일 함경북도 화대군 자가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중국 연길현으로 이주한 후 13살부터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1928년부터는 연길현 화전자에서 철공노동자를 하였다. 그후 반제동맹, 농민협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1932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1933년 3월부터는 나팔수로 활동하였고, 1940년에는 소부대 활동을 하면서 평양, 청진, 회령 등지의 일제 군사시설을 정찰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는 함경북도와 평안남도에서 도보안부 차장, 과장으로 있었으며, 그후 보안간부훈련소와 민족보위성에서 대대장,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59년 10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총국장, 부국장, 집단군 부사령관을 엮임하였다.

1961년부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검사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1967년 11월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1987년 사망 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참고문헌

  • - 『조선대백과사전』(평양: 대백과사전출판사, 2001)

  • -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평양: 직업동맹출판사, 196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