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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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법제
인물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출생 연도
1912년 10월 5일
사망 연도
1987년 4월 1일
출생지
함경북도 화대군 자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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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내용

1912년 10월 5일 함경북도 화대군 자가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중국 연길현으로 이주한 후 13살부터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1928년부터는 연길현 화전자에서 철공노동자를 하였다. 그후 반제동맹, 농민협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1932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1933년 3월부터는 나팔수로 활동하였고, 1940년에는 소부대 활동을 하면서 평양, 청진, 회령 등지의 일제 군사시설을 정찰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는 함경북도와 평안남도에서 도보안부 차장, 과장으로 있었으며, 그후 보안간부훈련소와 민족보위성에서 대대장,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59년 10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총국장, 부국장, 집단군 부사령관을 엮임하였다.

1961년부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검사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1967년 11월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1987년 사망 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참고문헌

『조선대백과사전』(평양: 대백과사전출판사, 2001)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평양: 직업동맹출판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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