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강암 지대석 위에 화강암 대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타고 창을 든 청동 화랑상을 설치하였다. 대좌 전면에는 청동으로 ‘화랑상’이라는 패를 부착하였다. 말의 두 뒷다리는 바닥에 닿아 있고 앞 다리를 높이 들고 있는데 왼 다리는 앞으로 뻗고 오른 다리는 조금 내리고 있어서 도약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뻗은 다리와는 달리 말의 목은 인물 쪽으로 잔뜩 당겨져 있는데 온몸의 일렁이는 근육과 함께 올라탄 인물의 자세와 힘을 느낄 수 있다. 투구를 쓰고 목이 긴 신을 신고 등자에 발을 끼고 높은 안장에 올라있는 화랑은 왼손으로 고삐를 움켜쥐고 재갈을 당기며 질주하다가 멈추는 순간을 보여준다. 오른손으로는 창을 들어 전면의 아래를 겨누고 있어 말 등에서부터 신체가 조금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표현하였다. 말의 앞다리 아래의 빈 공간에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표현하고 있어서 말 탄 인물만 표현하는 일반적인 기마상과는 다른 서사적 구조성을 보인다.
이 화랑상은 신라 화랑들의 기개와 나라 사랑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최초의 화랑상이다. 원래 16기 졸업생도들이 졸업기념 조형물로서 이 화랑상을 제작하기로 하였는데 사관생도의 경제적 여건상 제작비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실물 크기의 동상을 만들기 어려워 작가는 금액을 고려해 애초에 계획한 크기의 1/3 규모로 화랑상을 제작하였다. 당시의 상황에 관해서 ‘16기 화랑동기회’는 “동기회장(박병권)과 건립위원장(김정도)은 동기생으로부터 거출한 예산이 불과 얼마 안 돼 차근호 교수를 찾아가서, 예산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크기로 건립해 줄 것을 당부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건립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화랑상은 육군사관학교 내 우당도서관 앞에 위치하였으나 1985년에 이일영에게 의뢰한 새로운 화랑상이 건립됨에 따라 육군박물관 앞으로 옮겨 세웠다.
이 화랑상은 광복 후 제작된 최초의 기마상으로 이후의 화랑상이 기마형으로 제작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네모난 받침 위에 선 일반적인 동상과는 달리 수레바퀴를 더해 그 앞에 네모난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는데 이는 단지 기마 인물상이라는 도상을 따르는데 머물지 않고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작가의 사실적인 사고와 조형예술의 현실감을 구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