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41년에 조각가 백문기가 프랑스인 신부 안토니오 공베르를 소조로 제작한 흉상.
개설
내용
그리하여 작가가 소장하게 되었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자 작가는 장독 속에 흉상을 넣어 마당에 묻어 두고 피난을 갔다. 9.28수복으로 서울에 돌아오자 마당에서 파내어 가지고 있다가 다시 1.4후퇴 때 공군장교였던 작가는 여의도로 가져가 군용기에 실어 대구로 작품을 옮겨 오늘에 이른다. 근대기에 제작된 많은 작품들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지극한 보존 덕에 사실적인 방식의 근대 초상조각을 오늘까지 볼 수 있다.
그는 대학 입학 이후 「L부인상」과 「나부상」에서 고전적 희랍조각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1950년대에 후반 들어서는 「인상」(1958)이나 「모자상」(1959)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표현주의적인 양식을 추구하여 1960년대 초반까지 형태의 변형과 양감의 최대화를 시도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다시 사실적인 초상조각을 추구하며 기념조각에 힘쓰지만 이후 계속되는 「소녀상」시리즈를 통하여 괴체의 변용을 시도하였다.
백문기는 초기에는 목조와 브론즈를 함께 사용하여 작업하였으며 후기에는 주로 브론즈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양과 비례의 표현에 치중하였고 다양한 변모를 시도하며 초상조각을 제작하였던 작가이다. 그가 이룩한 정확한 묘사와 표현은 한국 구상조각의 한 전형을 이룬다. 이러한 작가의 행보에서 「K신부상」은 사실주의에서 출발한 근대기 조각의 전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빌라다르와 예술가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 『4인의 시각』(모란미술관, 2001)
- 『근대를 보는 눈』(국립현대미술관, 얼과알, 1999)
- 『한국대표미술작가선집 특집15-백문기』(금성출판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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