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에 묶여 정상적인 사회진출이 불가능한 인찬(설경구)은 뒷골목 인생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구속된다. 의문의 남자로부터 국가의 부름에 응하겠냐는 질문을 받은 뒤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형 집행 직전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곳에는 인찬 외에도 비슷한 처지의 남자 30명이 모여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 앞에서 김일성 암살을 위한 특수부대원이 된 그들은 서해의 외딴 섬에서 김준위(안성기)와 조중사(허준호)로부터 지옥훈련을 받으며 모진 시간을 견뎌낸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임무수행이 끝나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화해모드가 조성되자 국가는 골칫거리가 된 부대원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분노에 찬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섬을 탈출해 청와대를 향한다.
「쉬리」(1999)의 흥행성공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제작이 활성화된 당시 상황은 제작비 회수를 위해 폭넓은 대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과제와 연결되었다. 이와 같은 요구에 의해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민족 혹은 국가와 관련된 소재와 주제를 탐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 「실미도」 역시 1971년 서울에서 발생했던 특수부대원들의 난동사건이라는 실화에 주목해 역사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창조해냈다. 특히 국가에 의해 소모품으로 전락했던 개인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공론장으로 다시 소환한 것은 한국 최초 천만 관객 동원과 더불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국가와 관계 맺는 주체를 남성에 한정하고 여성을 모성신화 속에 가둠으로써 남성중심적 서사가 생산하는 쾌락에 치우쳐 있다는 점은 오락영화에 익숙한 강우석의 한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제25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