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흙벽에 채색. 세로 290㎝, 가로 524.5㎝. 운문사 구(舊)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그린 그림이 있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화면 좌측에는 백의관세음보살을, 우측에는 깊은 산속에서 면벽 수행하는 달마대사를 흙벽 위에 직접 그려 채색한 벽화 형식의 불화이다.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으로 하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그린 불화이다. 이 보살은 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여, 산의 연못가에 좌정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천수관음(千手觀音)·준제관음(准提觀音)·백의관음(白衣觀音)·양류관음(楊柳觀音) 등의 불화로 파생되었다. 이러한 관음보살도는 주로 원통전(圓通殿)이나 관음전(觀音殿)에 봉안된다.
달마대사도(達磨大師圖)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인 보리달마대사(菩提達磨大師)를 소재로 한 것으로, 그림으로는 좌선하고 있는 ‘면벽달마(面壁達磨)’의 모습이나 갈댓잎을 타고 양쯔강을 건너는 ‘노엽달마(蘆葉達磨)’, 양무제와의 문답 장면인 ‘초조문답(初祖問答)’, 반신상 혹은 전신상의 ‘달마독존(達磨獨尊)’ 등이 있다.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한 화면에 나란히 그려져 있다. 거대한 흙벽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으로 화면을 나누어 향우측에 관음보살, 향좌측에 달마대사를 배치하였다. 관음보살은 보타락가산에서 선재동자의 청문을 받고 있는 백의관음의 모습을 담았다. 관음보살의 뒤로는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고 앞쪽에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묘사하였다. 바다에는 여러 개의 바위산이 솟아 있고 좌우에 역시 바다에서 솟아난 연꽃과 연밥, 꽃받침만 남은 연꽃 줄기 등을 표현하였다. 관음의 오른쪽 아래에는 홍련 위에 녹색 연밥을 딛고 선 작은 선재동자가 두 손을 합장한 채 보살을 향해 있다. 선재동자는 쌍상투를 틀고 적색 저고리를 입은 앳된 모습에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다.
관음의 오른쪽 옆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고, 버들가지 위에는 분홍 몸통에 청색 깃을 지닌 청조 한 마리가 보살을 향해 앉아 있다. 정병은 굽이 있는 받침그릇 위에 손잡이가 오른쪽을 향해 놓여 있으며 몸통 세 곳에 황색으로 띠를 두른 뒤 은색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의 왼쪽에는 나지막한 암반 언덕이 있고 소나무 등이 울창한 모습이며 그 위로 다시 생략한 암반을 묘사한 뒤 명암으로 원근을 구분한 대나무를 풍성하게 묘사하였다.
화면 향좌측에는 역시 높은 기암괴석 위에 오른쪽으로 약간 방향을 튼 자세로 정면을 향해 결가부좌한 달마대사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달마를 중심으로 좌우와 위쪽 모두 빽빽한 산봉우리를, 둘러 달마가 마치 바위굴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는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 수행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달마의 주변에는 4인의 인물과 여러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먼저 정면 아래의 승려는 2조 혜가(慧可)를 나타낸 것이다. 혜가는 달마에게 법(法)을 구하며 자신의 자른 팔을 파초 잎에 담아 바치며 서있는 모습이다. 달마의 머리 뒤쪽에는 한 쌍씩 짝을 이룬 호랑이·사슴·여우와 4마리의 학이 산속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또 달마의 오른쪽 암굴 바깥에는 3인의 인물이 세로로 지그재그의 배치를 이루며 작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6조 혜능(慧能)과 제16조 라후라다존자를 그린 것이다.
운문사의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에서 두드러진 점은 가로가 긴 벽면을 좌우로 나누어 왼쪽에 관음보살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달마대사를 묘사함으로써 전체가 하나의 세트로 조합된 점이다. 조선 후기의 관음보살도는 주로 사찰 주불전의 후불벽 뒷면 벽화의 소재로 선호되었고 원통전의 후불도로 주로 봉안되었다. 운문사 또한 조선 후기 사찰 벽화의 흐름과 맥을 이어 당시 주불전인 대웅전의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함께 참선 수행하는 달마대사를 표현하였다. 달마대사에게 입문하기 위해 스스로 팔 하나를 잘랐다는 고사(故事)를 도해한 혜가(慧可)의 모습이 주목된다.
운문사(雲門寺) 대웅보전의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는 거대한 흙벽의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화려한 관음보살과 호방하고 대담한 달마대사를 조화롭게 그렸다.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의 유일한 사례로,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전통을 잇는 선찰(禪刹) 운문사의 성격을 잘 대변해 준다.
관음보살의 보관 표현과 연꽃 위에 합장 배례한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복식 표현은 1628년의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 및 17세기 후반의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벽화에 표현된 선재동자(善財童子)와 유사하다. 그러나 18세기 전반경에 활동한 화승 의겸(義謙)과 그 일파의 관음보살도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벽화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경의 불화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