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08㎝, 가로 204㎝. 안양암 아미타불도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을 포함한 4명의 제자, 6보살, 사천왕을 그린 불화로, 『안양암지』의 기록에 의하면 1889년 화승 경성(慶惺)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 서울 · 경기 지역의 현전하는 불화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아미타불화로, 이는 당시 아미타 신앙과 관련된 법회가 자주 개최되어 나타난 제작 경향으로 볼 수 있다. 안양암 아미타불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된 것으로 현재 대웅전 아미타삼존불상의 후불도(後佛圖)로 걸려 있다.
가로 길이가 긴 화폭의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피어오른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로 엄지와 중지를 결하였고 오른손은 가슴께로 들어 엄지와 검지를 결하였다. 아미타여래의 양쪽에는 가섭과 합장한 아난을 포함한 4명의 제자와 관음과 세지보살을 포함한 6보살, 그리고 사천왕이 자리하였다.
화면 양쪽 아래 부분에 둘씩 나뉘어 묘사된 사천왕은 가로 길이가 유달리 길고 높이가 낮은 화폭으로 인해 서 있는 자세가 아닌 평상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된 점이 눈에 띈다. 이와 유사한 구성의 아미타불도가 1873년 서울 성북구 미타사(彌陀寺) 아미타불도에서 보이며 사천왕이 평상에 앉은 모습은 현전하는 불화 중에서는 1770년 경상북도 예천 서악사(西岳寺)의 불화에서 처음 보이고 있어, 안양암 아미타불도가 기존에 그려지던 불화들을 근거로 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양암 아미타불도와 같이 가로로 긴 화폭은 조선 말기 후불도에서 종종 보이는데, 당시의 불전 건축 및 내부 장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이 그림과 같은 후불도는 천장 높이가 낮은 소규모 전각 내부의 높은 불단 위로 걸리게 되면서 화폭의 높이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녹청과 군청 등을 사용하였으며, 부분적으로 금을 사용하였다. 특히 아미타여래의 광배는 금으로 가득 메워 붉은 법의의 끝단에 시문된 꽃무늬와 더불어 화려함을 더 한다
안양암 아미타불도는 유달리 가로로 긴 화폭과 이로 인해 평상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한 앞쪽의 사천왕, 그리고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아미타불의 광배가 특징적이다. 여래의 신광 전체를 금으로 메우는 기법은 서울 · 경기 지역의 불화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