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도덕암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승려 초상화.
내용
몽계 선의 진영은 드물게 조성 당시의 기록이 화면 뒷면에 쓰여 있어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화기의 글자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이 기록을 통해서 몽계 선의 진영이 1863년(철종 13)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확한 글씨가 판독되지는 않으나 ‘수계(受戒)’ 이후 승려 이름으로 보이는 한자 ‘승(勝)’이 기록된 것에서 몽계 선의의 수계 제자들이 진영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계 선의 진영이 봉안된 도덕암은 대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몽계 선의는 이곳에 주석하면서 1854년 사찰을 중수하고 칠성암이라 불리던 사찰의 이름을 도덕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승려의 진영은 사찰을 개창, 중창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거나 그 곳에 오랫동안 주석한 경우에 봉안된다. 몽계 선의의 경우 도덕암을 중창하는 데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진영이 봉안되어 예경을 받을 수 있었다.
특징
몽계 선의 진영의 배경은 상단 · 하단의 2단으로 나뉘었는데 방안의 바닥과 벽이 맞닿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조선 후기 진영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은 방안으로 보이는 공간에 수행에 필요한 도구를 든 승려의 옆모습을 그린 것이다. 몽계 선의 진영은 그와 같은 유형 가운데 드물게 제작 시기가 분명하여 진영의 양식 분석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화면 속 얼굴의 이목구비와 인상이 현실의 인물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 초상화로서도 가작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승려 화가들은 진영을 그릴 때 얼굴을 제외한 복식과 배경 등 다른 부분은 반복적으로 비슷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몽계 선의 진영에서 보이는 주름이 많은 풍성한 장삼과 색색의 가사 끈을 긴 고리가 생기도록 매듭을 짓는 표현 방식은 19세기 후반 경상도 전 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몽계 선의 진영은 19세기 후반에 경상도 불교 교단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진영 양식에 따라 주문 제작된 초상화이다.
진영 제작 시기인 1863년은 몽계 선의의 행적이 확인되는 1854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고, 화면의 사실적인 얼굴 표현으로 보아 그의 만년의 모습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승려의 장례에 위패 대신 진영을 놓는 전통에 따라 제자 또는 법맥이 가까운 승려들이 계를 조직하여 상례를 대비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대구광역시·경상북도Ⅰ(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1)
- 『통도사가람배치실측조사보고서』(울산대학교 건축대학, 예문사, 2007)
-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 『통도사지』(한국학문헌연구소 편, 아세아문화사, 1977)
- 「조선후기 승려 진영 연구」(이도영,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조선왕조시대 후기 불교진영」(정우택, 『다시 보는 우리 초상의 세계: 조선시대 초상화 학술논문집』,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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