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하 ()

목차
정치
인물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2년
사망 연도
1994년
출생지
강원도 춘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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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내용

1912년 11월 17일 강원도 춘성군 출생으로, 춘천농업학교 및 경성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한 후 잠시 교사로 활동하다가 조선총독부 농림국 촉탁으로 근무했다. 해방 후에는 대동청년단 강원도단장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김우종, 최규옥 등과 함께 신탁통치반대 강원도위원회를 춘천에서 결성했다.

1946년 9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민족통일강원도사무국의 청년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7년 6월에는 반탁철혈(反託鐵血) 춘천동맹을 결성해 반탁시위를 전개했다. 1950년 4월 청방위특별명령 제1호 및 청방위일반명령 제1호로 육군본부 직할로 창설된 청년방위단의 춘천지부장에 임명되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춘성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1년 9월 족청 해체와 청구회의 해산으로 새로이 창립된 신정회(新政會)의 책임간사로 선출되었다.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 1952년 4월 내각책임제 개헌안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이후 자유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및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정치정화법에 의해 정치활동을 규제받다가 1963년 2월 1일자로 정치활동이 허용된 후 민정당에 가입했다.

이후 강원방송국(현 춘천방송국) 사장 및 반공청년연맹 이사를 역임했으며, 1987년에는 4·13호헌조치 철회 전현직 국회의원 성명에 참여했다. 1994년 10월 6일 서울 경찰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참고문헌

『역대 국회의원 총람』(국회사무처, 1977)
『대한민국건국10년사』(대한민국건국10년지간행회, 건국기념사업회, 1956)
「전현 의원 71명 4·13철회 성명」(『동아일보』, 1987.6.25.)
「반개헌파 50명」(『경향신문』, 1952.4.22.)
「춘천에 반탁시위」(『동아일보』, 1947.6.2.)
「독촉 강원사무국 부서를 결정 발표」(『동아일보』, 1946.9.24.)
집필자
김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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