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무신 위정철이 회답사로 후금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개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위정철 일행은 압록강을 건넌 후 7일 만인 3월 26일에 심양에 도착했고, 다음날(27일)부터 후금 관원들과 외교교섭을 시작하였다. 이보다 앞서 후금은 조선이 춘신사(春信使)를 통해 보낸 예물(禮物)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예물 접수를 거절했다. 이에 조선은 저자를 회답사로 보내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고, 그는 조선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여 후금의 오해를 풀고 예물을 전달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했다. 이밖에 조선의 대일(對日) 관계를 설명하고 후금이 요청한 약재(藥材)의 대가에 대해 협의했으며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잡혀 간 조선인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등의 교섭 활동을 펼쳤다.
또, 4월 21일에는 홍타이지[皇太極]를 만나 인조의 국서(國書)를 전달하고, 그의 국서를 받아 귀국하려 했지만, 홍타이지가 개시(開市) 협상을 위해 조선에 간 용골대(龍骨大)가 돌아온 후 국서를 보내겠다고 함에 따라 4월 25일에 심양을 출발하여 조선으로 돌아왔다.
한편,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후금의 칸[汗]의 계보(系譜)가 실려 있는데, 이는 후금에 대한 정보를 조정에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후금’이라는 국호 대신 ‘호(胡)’라고 지칭한 것을 통해 저자의 후금에 대한 반감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인조실록』
- 『조선시대 북방사-자료집』(동북아역사재단 저, 동북아역사재단, 2007)
- 「『심양왕환일기』에 나타난 인조 9년(1631) 조선-후금 관계」(스즈키 카이(鈴木 開), 『한국문화』6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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