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세자와 후대 왕에게 내리는 교훈을 담아 1758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개설
편찬/발간 경위
같은 해 6월 10일 창경궁(昌慶宮) 숭문당(崇文堂)에 우의정 신만(申晩) 등이 입시한 자리에서 초고를 읽게 한 뒤에 어제(御製)의 명칭이 ‘속상훈(續常訓)’으로 결정되었고, 『어제상훈』의 전례에 따라 활자로 간행하도록 하였다. 6월 11일 창경궁 숭문당에 나아가 어제 편차인(編次人)을 입시케 한 뒤, 채제공(蔡濟恭)에게 초고를 읽게 하고는 후대의 왕들이 이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이어 이 책은 당해 연도에 교서관에서 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내용
내용 중 특히 강조된 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군사(君師)에 대한 강조이다. 영조는 평소 군주의 위상을 군사로 규정하였는데, 군사란 유학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요순(堯舜) 시대의 군주상이다. 군사는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까지 주도하는 군주상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세자와 후대 왕들에게 군사로서의 위상을 바랐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애민에 대한 보충과 강조이다. 영조는 애민을 강조하기 위해 유교 경전의 내용만을 발췌하지 않고 조선조의 사례를 함께 수록하였다. 이 책에서 영조는 조종(祖宗)께서 자신에게 억조(億兆)의 백성들을 위임했음을 여러 차례 설명하고, 조종께서는 백성에게 임하면서 항상 애민과 보민(保民)을 우선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애민과 보민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절용(節用)이고, 절용의 근본은 검약함을 숭상하는 숭검(崇儉)임을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영조어제훈서(英祖御製訓書)』(서울대학교 규장각, 2003)
- 「영조대 중반 어제훈서의 간행 양상과 의의:『어제대훈』과 『어제상훈』을 중심으로」(이근호, 『장서각』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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