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기독교청년회 전국연합회는 1914년 4월 결성된 각지 기독교청년회(YMCA)의 연합조직이다. 1903년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모태로 1914년 이상재에 의해 결성되었다. 1924년 세계YMCA연맹에 가입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계몽운동·농촌운동·사회운동을 주도하였다. 1970년대 이후 시민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 청소년운동, 환경운동 등을 선도하였다. 2015년 현재 전국 62개 지역, 10만여 명의 회원, 2천여 명의 실무자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청년운동의 효시로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의
1914년 4월 결성된 각지 기독교청년회(YMCA)의 연합조직.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총무에 취임한 이상재는 1914년 4월 2~5일 개성에서 서울의 경신학교·배재학당·상동청년학원·세브란스의전·중앙청년회학관과 숭일학교(광주)·신흥학교(전주)·영명학교(군산)·한영서원(개성) 등 9개 학생기독교청년회(YMCA) 등을 모아 조선기독교청년회전국연합회(朝鮮基督敎靑年會全國聯合會)를 결성하였다.
이 연합회는 3년마다 정기대회를 개최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다수의 회원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1920년 신흥우(申興雨)가 총무에 취임하면서 각종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독자성 확보에 나선 결과 1922년 일본YMCA연맹에서 독립하여 1924년 세계YMCA연맹에 가입하였다.
기능과 역할
하지만 1935년 신흥우가 중심이 된 적극신앙단(積極信仰團) 사건으로 지도부의 갈등이 빚어졌고 학생부와 농촌부가 폐지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다. 이어 1938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신흥우 등의 지도자들이 검거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고, 마침내 같은 해 일본기독교청년회조선연합회(日本基督敎靑年會朝鮮聯合會)로 개편되었으며, 1944년 서울의 중앙YMCA를 제외한 모든 지방 YMCA가 해산되었다.
1945년 10월 재건된 조선중앙YMCA가 11월 연합회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이후 각지 지방YMCA들이 속속 재건되었다. 1948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3년 대회가 부활했으며, 1951년 3년 대회가 2년 대회로 변경되었고, 1955년 2년 대회에서 대한기독청년회연맹(대한YMCA연맹)으로 개칭하였다.
1950년대 연맹은 국제YMCA의 지원을 받으며 6·25전쟁으로 와해된 조직의 재건과 구호사업에 노력했고, 1965년 사업평가제 실시 이후 1970~1980년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사업 활동의 전문화를 추진하였다. 1960년대 연맹은 각종 사회개발사업에 주력했고, 1970년대 이후 시민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 청소년운동, 환경운동 등을 선도하였다. 2014년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YMCA운동사』(대한YMCA연맹 편, 로출판, 1986)
-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전택부, 정음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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