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온 ()

천주교
인물
일제강점기 동양인 최초로 미국 메리놀 수녀회에 입회한 천주교인. 수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6년(고종 43)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인동(仁同)
출생지
인천부 전동(인천시 중구 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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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동양인 최초로 미국 메리놀 수녀회에 입회한 천주교인. 수녀.
생애 및 활동사항

1906년 9월 26일 인천부 전동에서 세무 관료였던 장기빈(張箕彬)과 황루시아의 3남 4녀 중에서 태어났다. 제2공화국의 국무총리였던 장면(張勉)의 동생이다. 세례명은 마리아, 수도명은 앙네다이다. 집안이 1908년 인천 화촌동으로 이사하였다가 다시 서울로 이주함에 따라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1922년 숙명여고 보수과를 졸업하고 서울교구장인 뮈텔(G. Mutel) 주교의 추천으로 언니인 장정혜(張貞慧)와 오빠인 장면의 처조카 김교임(金敎任)과 함께 그 해 5월 미국 메리놀 수녀회에 입회하여 메리놀 수녀회의 동양인 최초 입회자가 되었다. 1922년 8월 뉴욕 메리놀 수녀회 모원에서 앙네다라는 수도명을 받았고, 장정혜, 김교임과 함께 착복식을 하였다. 그러나 언니인 장정혜는 도중에 수도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하였고, 장정온은 1925년 4월 30일 첫 서원을 하였다.

1925년 10월 김교임 수녀를 비롯한 다른 5인의 수녀들과 함께 귀국하여 평안북도 의주 본당에서 선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어린이들과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메리놀회 수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편 통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31년 메리놀 수녀회에서는 한국에 새로 수녀원을 창립하면서 그를 새로운 수녀원의 교육 담당자로 선발하였는데, 이를 위해 일본 동경 성심학원에 유학하여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1935년 귀국하였다.

1932년 6월 27일 평양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설립되었는데, 1935년 귀국하여 이 수녀회의 지도 수녀가 되었다. 1938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게 되고 그해 7월 3일 초대 수련장이 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적국인 미국인들이었던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일시적으로 감금되었다. 이에 같은 달 13일 평양교구장인 오세아(O'Shea) 주교는 그를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메리놀회 수녀들이 모두 철수하여 어렵게 생활하는 중에도 회지 『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를 창간하여 수녀들의 교양과 양식을 넓히는데 힘썼다.

1945년 해방 후 북한 지역에서의 종교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신부와 수녀들이 체포되고 종교단체들도 폐쇄되었다. 이 과정 중에 북한이 수녀원 건물을 양도하라고 명령함에 따라 1950년 5월 14일 수녀원을 해산하고 선교리 친척 집으로 갔다. 5월 23일 장기려(張起呂) 박사의 주선으로 인민종합병원에 입원하였지만 6월 16일 장기려 박사가 군의관으로 차출되자 퇴원하였다. 6월 19일 진남포 본당 조문국 주임 신부의 배려로 진남포에 머물렀지만, 6월 24일 조문국 신부가 납치되자 다시 평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7월 6일 강성효, 변대옥 수녀들과 함께 용궁리 회장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7월 24일 영유본당 관할의 송림리 공소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10월 4일 저녁 인민군 장교 2명과 사복 차림의 또 한 사람에 의해 연행된 뒤 행방불명되었다.

참고문헌

『북녘 땅의 순교자들』(평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가톨릭출판사, 1999)
『천주교 평양교구사』(천주교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분도출판사, 1981)
「한국 교회의 인물상(31), 장정온(張貞溫, 앙네다) 수녀」(윤선자, 『교회와 역사』203,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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