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과 도안면 경계에 있는 이성산에 있는 백제시대 토축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추성산성은 서쪽의 청주 지역으로부터 증평 · 도안을 거쳐 북동쪽인 음성 · 충주 지역으로 이어지는 경로와 남쪽의 보은 · 미원 지역에서 초정 · 청안을 거쳐 증평으로 진입하는 경로 및 미호천 지류인 보강천 일대의 평야지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다.
북성은 이성산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인데, 내성과 외성 및 2개의 자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형태이다. 내성과 외성의 공유벽을 제외한 북성의 둘레는 429m이며, 내성 219m, 외성 310m, 내 · 외성 공유벽의 길이는 100m이다. 자성의 둘레는 각각 101m, 98m이다.
북성에서 400m가량 떨어져 있는 남성도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둘레는 1,411m이며, 내성과 외성의 둘레는 각각 741m, 861m이며, 내 · 외성 공유벽은 191m이다.
성벽은 먼저 기반암을 정지하고, 바닥을 다져 기저층을 조성한 후 토루를 쌓았는데, 토루 축조 과정은 성벽 구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남성의 외성 서벽과 남벽, 내성 동벽 등은 성 바깥쪽에 단면 반원형의 토제(土堤)를 만들고 이에 의지하여 성 안쪽으로 토루를 쌓아 올려 성벽을 확장하여 축성하였다. 남성의 내성 북벽, 내성 북동 회절부 성벽, 내성 남벽 등은 기저층 위로 수평으로 성토하여 토루를 축조하였다.
북성에서는 건물지 2개소, 문지 1개소, 치성 1개소, 망대지 2개소가 조사되었으며, 남성에서는 건물지 8개소, 문지 6개소, 치성 1개소, 적대 2개소, 망대지 2개소, 수구지 1개소, 우물 1개소 및 배수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많은 양의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호류와 옹류의 구연부 형태와 타날문(打捺文) 구성 등으로 보아 4~5세기로 편년되며, 3세기 이전으로 편년되는 유개대부호(有蓋臺附壺) 등도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 등을 통해 볼 때 추성산성은 4세기 중엽경에 축성되어 5세기 대까지 사용되었으며, 축성 이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의의 및 평가
또한, 성문과 수문 등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수 있어 한성백제 산성의 특성과 축성기법 등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논문
- 최경용 · 문수균, 「증평 추성산성 백제 우물과 주거지」(『선사와 고대』 62, 한국고대학회, 2020)
- 최병화, 「백제 석축산성의 성문구조와 변천과정」(『야외고고학』 23, 가경고고학연구소, 2015)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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