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남효온 등 3인의 선현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역사적 변천
그 뒤 1930년과 1931년 사이에 의양서원의 복원이 유림과 남진의 후손인 이천(夷川) 남창희(南昌熙, 1875∼1945)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의 공론을 형성하였지만 성사되지 못하였다. 해방 이후 남창희의 아우 남기희(南箕熙)를 비롯한 문중의 의논에 따라 의양서원 옛 터에 건물을 세우고 의양서당이라 명명하였다. 현재 향사는 지내지 않고 있다.
내용
남진은 자가 성유(盛由), 호는 추계(秋溪)이다. 음관으로 선략장군이다. 재종숙 남효온에게 글을 배웠으며 도학과 청검으로 이름났다. 갑자사화 때 삼가 두심동으로 낙향하여 세상을 마쳤다.
남용익은 자가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이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 뛰어났으며, 효종·현종·숙종대에 걸쳐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문명을 날렸지만 늘 근신하고 근면하였다. 1689년 소의장씨(昭儀張氏)가 왕자를 낳아 숙종이 그를 원자로 삼으려 하자, 여기에 극언으로 반대하다가 명천으로 유배되어 3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교남지(嶠南誌)』
- 『추강집(秋江集)』
- 『한국서원총람』(한국서원연합회, 2011)
- 『경남의 서원』(구산우 외, 선인, 2008)
- 『의령군지』(의령군지편찬위원회, 2003)
- 「도내각읍서원훼철사괄성책초」(이우성 편, 『서벽외사해외수일본총서』15, 아세아문화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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