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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개념
사람과 천지의 기운이 만나서 일으키는 재미나 즐거운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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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람과 천지의 기운이 만나서 일으키는 재미나 즐거운 감정.
내용

보통은 재미있거나 즐거운 감정을 ‘흥(興)’이라고 하여 ‘한(恨)’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후기 철학자인 최한기는 사람을 포함해 천지의 기운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한다고 하였다.

이런 생각은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나타났다. 13세기의 이규보(李奎報)는 “흥이 깃들이고 사물과 부딪칠 때마다 시를 읊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여 ‘우흥촉물(寓興觸物)’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15세기의 정극인은 가사 「상춘곡(賞春曲)」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인들 다를쏘냐.”라고 했다. 사물과 자아가 만나 하나가 되는 즐거움을 ‘흥’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삼국시대에도 발견된다. 원효는 설총을 낳은 뒤에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지냈는데 어느날 광대들이 갖고 노는 큰 박을 얻어서 수많은 부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교화하였다고 한다. 이는 고승 원효가 자기를 낮추고 민중과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노래와 춤의 흥으로 나타냈다는 말이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신라 왕실의 국사가 된 경흥이 병이 들었을 때 한 여승이 찾아와서 열한 가지 탈을 쓰고 우습기 짝이 없는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에 턱이 빠질 정도로 웃다가 경흥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탈춤을 추며 흥겹게 하여 근심으로 인해 든 병을 낫게 하였다는 것이다.

경흥의 병을 고친 여승의 탈춤은 조선 후기 탈춤과도 통한다. 양반과장과 노승과장에서 자신을 억압하던 양반 제도와 현실을 벗어난 고고한 지식인을 풍자하고 나아가 남성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할미과장까지 탈춤은 시종 흥을 놓지 않았다. 현실의 비애와 괴로움을 흥을 통해 풀어냈던 것이다. 민요에서도 한편에서는 시집살이의 괴로움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보리방아 물 부어놓고 생각난다.”라 하여 웃음을 주고 슬픔을 차단하였다. 요컨대 이 땅의 민중들로 하여금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슬픔을 이겨내게 한 것이 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흥은 도(道)를 찾는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퇴계 이황은 한시(漢詩)는 흥겹지 않기에 우리말로 된 노래 「도산십이곡」을 짓는다고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뛰게 해서 더러운 마음을 씻어버리고 느낌이 일어나 천지와 통하게(感發融通)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의 흥」(신연우, 『이황 시의 깊이와 아름다움 』, 지식산업사, 2006)
『 탈춤의 원리 신명풀이』(조동일, 지식산업사, 2006)
「흥의 미학」(신은경, 『고전문학연구』 9,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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