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고대 사회에서 갑골(甲骨)을 이용해 미래의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점복(占卜)이 성행하였다. 갑골은 크게 동물의 좌우견갑골을 이용한 복골(卜骨)과 거북의 배와 등의 껍질을 이용한 복갑(卜甲)으로 나뉜다.
신석기시대 후기 중국 북방에서 복골이 처음 출현해 점차 중원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상초기 하남 정주(鄭州) 지역에서 복갑이 처음 출현해 상주(商周) 시기에 갑골점복이 크게 성행하였다. 중원 지역에서는 서주 중기 이후에 갑골점복이 급격히 쇄락하지만 중국 북방에서 유행하던 복골이 철기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되어 성행하고, 다시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골의 재료는 소, 돼지, 양, 사슴 등의 견갑골을 사용하였다. 견갑골은 초기에는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점차 뒷면의 골척(骨脊)을 제거하고 골면을 얇게 다듬었다. 초기에는 견갑골 중간의 얇은 부위에 직접 불로 지져[灼] 복조(卜兆)를 만드는 방식이 사용되다가 점차 원형 홈[鑽]과 그 옆에 타원형 홈[鑿]을 만들어 점복의 결과를 인위적으로 제어하였는데,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서는 타원형 홈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삼국지』 「동이열전」에 부여에서 소의 발굽을 이용해 길흉을 점쳤다거나 『 삼국유사』의 내용을 인용해 가야에서 거북점을 쳤다고 하지만 이들 전래 문헌의 기록은 모두 갑골을 이용해 길흉을 점치는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복골은 함경북도 무산 호곡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하가점(夏家店)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의 복골은 대부분 서기전 2세기에서 서기후 4세기에 속하는 내륙과 해안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한반도 남부인 광주 신창동, 사천 늑도, 해남 군곡리, 부산 낙민동, 김해 봉황동, 창원 남산, 경산 임당 등에서 출토된 복골은 사슴과 멧돼지의 견갑골 위주이고, 서울 풍납토성, 부산 낙민동, 통영 연대도에서는 소의 견갑골을 이용한 복골이 발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