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청동솥은 의례용으로 사용한 청동으로 만든 용기이다. 정은 중국에서 조상신을 모실 때 바치는 고기를 익히기 위해 사용된 그릇으로 군주나 대신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한다. 한반도에서는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부터 삼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청동솥은 중국에서 제작되어 한군현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울산 하대 23호묘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큰 청동솥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청동솥은 집안의 칠성산 96호분과 우산하 68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신라의 청동솥은 황남대총, 천마총 등 대형의 왕묘급에서 출토되었다.
정의
의례용으로 사용한 청동으로 만든 용기.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현황
삼한의 것으로 울산 하대 23호 덧널무덤과 김해 양동리 441호 덧널무덤 출토품이 알려져 있다. 울산 하대 23호묘 출토품은 높이가 무려 49.8cm에 이르는 대형으로 한반도 출토품 중에서는 가장 크다. 또한 몸통에 제작할 때 거푸집 내형과 외형을 띄우기 위한 형지의 흔적이 많이 확인되는 점, 양쪽의 귀가 유난히 긴 점도 이 청동솥의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동정은 구연에 글자가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구연단에는 전서체로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확인이 쉽지 않다. 판독된 글자는 "谷(西)□宮鼎, 容一斗(升), 幷(弁)重十七斤七兩, 七"의 14자이다. 谷□宮은 이 청동솥이 사용되던 곳이며, 나머지는 이 솥에 담기는 양을 나타낸 도량형과 관련된 내용으로 추정된다. 이 청동솥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전한대로 생각되는데, 무덤에 부장된 연대는 3세기라서 장기간 전세가 되어 부장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청동솥이 확인되는데, 고구려의 것으로 집안 칠성산 96호분과 집안 우산하 68호분 출토품이 있다. 형태적으로 중국 한대의 것과 차이가 없지만, 아마도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는 황남대총 남분,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등지에서 청동솥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청동솥 3점과 철정 1점이 출토된 황남대총 북분은 가장 많은 수가 하나의 무덤에서 확인된 사례이다. 신라에서는 모두 대형의 왕묘급에서 청동솥이 출토되고 있어 주목되며, 고구려의 영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신라고분 출토 청동용기 연구」(김문규, 『고고광장』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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