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내용
절터의 가운데에 4각 탑터가 있고, 4각탑의 뒤에는 본전(本殿)이 있는데, 중금당(中金堂)에 해당한다. 중금당 좌우로는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 해당하는 건물터가 자리하고 있다. 4각탑터의 남쪽에는 문터가 있다. 이 문터는 4각탑터를 중심으로 남북에 놓인 중금당과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오매리절터에서 1988년에 탑지(塔誌)로 추정되는 금동판 명문이 발견되었다. 명문의 내용은 죽은 왕의 영혼이 도솔천에 올라 미륵에 참배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특히 명문에 ‘□화삼년(□和三年)’이라는 금동판의 제작 연대를 알려주는 단서가 있어 주목을 받았다. 학계의 연구 결과 546년(양원왕 2)과 604년(영양왕 15)이 유력한 것으로 밝혀졌다. 금동판이 탑에 부착한 탑지라면 그 제작 연대는 오매리절터의 창건연대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특징과 의미
참고문헌
- 『북녘의 문화유산』(국립중앙박물관, 2006)
- 『고구려의 성과 절터』(방학봉, 신성출판사, 2006)
-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1)-고구려·백제·낙랑 편』(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신포시 절골터 금동판 명문 검토」(이승호, 『목간과 문자연구』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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