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주성 ()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고창 전투와 관련된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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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고창 전투와 관련된 성곽.
역사적 변천

순주성(順州城)이 위치한 순주(順州)는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豊山) 지역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후삼국시기인 922년(태조 5) 6월에 고려에 귀부하였고, 그 댓가로 이듬해 3월에 하지현(下枝縣)에서 순주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내용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경상도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927년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의 경주를 공격하여 경애왕(景哀王)을 죽이고 경순왕(敬順王)을 세웠다. 경주를 구원하기 위해 남하한 고려의 왕건과 경주를 출발한 후백제의 견훤이 대구의 팔공산(八公山)에서 전투를 벌였다. 팔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패한 후 경상도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순주성(順州城)에 자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다. 후백제는 의성(義城)을 장악하고 북상하여 930년 고창(高昌: 안동)에서 고려와 전투를 벌였다. 여기에서 후백제는 패했지만 서쪽으로 이동해 순주성을 함락시키고, 백성들을 전주로 올겼다고 한다. 고려의 왕건은 원봉이 전에 공(功)이 있다하여 용서하고, 그 대신 순주를 하지현으로 다시 강등하였다.

의의와 평가

930년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경상도에서 승기를 잡았고, 936년 일리천(一利川)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이렇듯 순주성이 위치한 안동지역은 고려가 후삼국의 정국운영을 주도하고, 결국 후삼국을 통일하기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하게 되었다. 고창 전투는 한반도의 정세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되며, 팔공산 전투와 운주(運州) 전투와 더불어 후삼국의 3대 대첩으로 보기도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한국중세사연구』 (하현강, 일조각, 1988)
「고창전투와 후삼국의 정세변화」 (유영철, 『한국중세사연구』 7,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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