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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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시중, 청주도독, 웅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반란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사망 연도
822년(헌덕왕 14)
주요 관직
시중|청주도독|웅주도독
관련 사건
김헌창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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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시중, 청주도독, 웅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반란자.
개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었던 김헌창은 시중을 역임하기도 하며 비교적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점차 지방관으로 내몰리면서 중앙에서 멀어져갔고 불만을 품게 되었다. 결국 822년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구실로 웅주(熊州)에서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한 달만에 진압당했다.

생애

김헌창의 아버지는 이찬 김주원(金周元)이었다. 원래 김주원은 태종무열왕의 6세손으로서 37대 선덕왕이 사망한 이후 왕위계승 후보 1순위였다. 하지만 당시 정치 상황 변동으로 인해 왕위에 오르지 못했고, 김경신(金敬信)이 즉위하여 원성왕이 되었다. 이에 김주원은 명주(溟州)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성장한 김헌창은 애장왕대인 807년 시중으로 임명되었다가 물러났다. 헌덕왕대인 813년 무진주도독(武珍州都督)이 되었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814년 시중에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퇴임하였다. 하지만 이후 816년 청주도독(菁州都督)이 되었고, 821년 웅주도독(熊州都督)이 되는 등 주로 외직으로 나가면서 인사상 홀대를 받았다. 외직을 도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였고, 결국 822년 웅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활동사항

822년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구실삼아 웅천주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여 신라 왕조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지향하였다. 무진주, 완산주, 청주, 사벌주와 국원소경, 서원소경, 금관소경이 여기에 호응하였다. 신라의 9주 5소경 가운데 4주 3소경이 김헌창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란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신라의 진압군에 손쉽게 진압되었다.

신라는 선발대, 본대, 별동대로 진압군을 편성하여 운용하였다. 신라군의 본대가 경상북도 성주에서 반란군과 대치하는 사이 선발대가 후방의 보은산성을 점령하면서 전세는 신라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반란군의 최후 거점인 웅진성은 신라군에 포위되어 10일 만에 함락당했다. 성이 함락되기 직전 김헌창은 자살하였고, 성을 함락한 신라는 반란의 핵심 관련자 239명을 처형하였다.

의의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신라의 9주 5소경 가운데 4주 3소경을 장악하였고, 난이 진압된 후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이 825년에 다시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 왕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국가를 지향하면서 신라 하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헌창의 난은 호족의 지방할거적 경향을 촉진시켰고, 왕위계승 쟁탈전을 더욱 심화시켰다. 결국 김헌창의 난은 이후 장보고의 등장과 후삼국의 정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하대 왕위계승 연구』(김창겸, 경인문화사, 2003)
「김헌창의 난과 신라군의 대응」(이상훈, 『군사연구』 138, 2014)
「신라 하대 김헌창의 난과 그 성격」(주보돈, 『한국고대사연구』 51, 2008)
「신라 하대 김헌창 난의 성격」(황선영, 『부산사학』 35,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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