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부(兵部)는 최초로 설치된 신라의 중앙관서(中央官署)로서 일체의 군사사무를 관장하는 기구였다. 이러한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兵部令)은 신라 군사조직에 대한 최고의 지휘권자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職官志)에 따르면, 중앙관서의 장관들은 대부분 대아찬(大阿湌)에서 이찬(伊湌)까지지만, 병부령의 경우는 대아찬에서 태대각간(太大角干)까지다. 병부령의 관등(官等)이 다른 장관들보다 높았으며, 재상(宰相)이나 사신(私臣)을 겸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병부령은 516년(법흥왕 3)에 처음 설치되었고, 544년(진흥왕 5)에 1명이 추가되었으며, 659년(태종무열왕 6)에 다시 1명이 추가되어 모두 3명이 되었다. 병부령이 설치되고 추가된 시점은 6~7세기로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고 삼국을 통일해 나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신라의 대외 팽창과 군사적 업무의 증가로 병부령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병부령은 평시와 전시에 따라 그 위상이 달랐던 것 같다. 평시의 경우 각종 군사업무를 주관하는 병부의 수장으로서 군령체계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지만, 전시의 경우 그 위상이 다른 장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태종무열왕과 문무왕대에 병부령이었던 진주(眞珠)는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된 김유신(金庾信)에 비해 그 지위가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를 이은 고려는 918년(태조 1)에 병부를 설치하면서 병부령을 두었는데, 이어 병부를 병관(兵官)이라 개칭하면서 병부령은 병관어사(兵官御事)로 고쳐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