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9년 10월 부산 지역 유지들이 한국인의 생활환경과 교육 개선 등 문화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부산에서 결성한 사회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예컨대 일제는 1920년 11월과 12월에 「임시교육조사위원회 규정」과 「조선총독부 교과서조사위원회 규정」을 각각 발표하고, 1921년 1월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식민 교육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부산예월회는 1921년 3월 12일 임시교육조사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한 건의안을 준비하였다. 또 같은 해 4월 24일 부산 지역 유지 100여 명이 모여 조선교육개선기성회를 조직하고, 조선총독부에 제출할 진정서를 1천 수백 명의 연서로 작성하였다. 부산예월회도 40여 명이 모여 건의서를 작성하여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는 등 식민 교육을 강화하려는 일제의 정책에 앞장서서 항거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3.16; 1921.4.12; 1921.6.29)
-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이동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0)
- 「일제시기 안희제의 기업 활동과 경제 운동」(오미일, 『국학연구』 5, 국학연구소, 2000)
- 「1920년대 전반기 부산 지역 민족 해방 운동의 전개와 노동자 계급의 항쟁」(이귀원,『한국근현대지역운동사』Ⅰ-영남편, 역사문제연구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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