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서울시 명륜동에 있던 불교계의 고등교육기관.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22년 중앙학림은 불교계의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한용운의 지도로 중앙학림 학생들은 불교계의 만세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앙학림은 총독부로부터 전문학교 승격이 거부되고, 1922년 4월을 기점으로 5년간 휴교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8년 중앙불교전수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고, 1930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됐다. 1940년 혜화(惠化)전문학교로 개칭하였다가 1946년 동국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니 현재의 동국대학교이다.
기능과 역할
중앙학림은 일제강점기 불교계 지식인 양성기관으로써 졸업생들은 불교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불교계의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번 교명이 바뀌었지만 운영 주체는 불교계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독립선언서연구』(김소진, 국학자료원, 1999)
- 『동대70년사』(동국대학교70년사편찬위원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 「중앙학림과 식민지 불교의 근대성」(김광식, 『사학연구』 제71호, 한국사학회, 2003)
- 「3·1운동기 불교계의 동향」(김순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