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일대 50년 가운데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까지의 40여 년은 방편교를 진실인 듯이 말하고 방편을 방편이라 설하지 않았다. 『법화경』을 설하면서 삼승교는 방편, 일승교는 진실이라 하여 방편을 펴서 진실을 나타내는 석존 일대의 교화를 총체적으로 밝혔다. 개권현실(開權顯實)에서 개(開)는 개제(開除)의 뜻이니 집착하는 마음을 열어서 제거하는 것을 가리키며, 현(顯)은 현시(顯示)의 뜻이니 진실한 뜻을 드러내 보임을 말한다.
『법화경』 이전의 경전은 아직 진실한 가르침이 나타나 있지 않으나[未開顯], 『법화경』에 이르러 비로소 집착되어 있는 마음을 열므로 진실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법화개현(法華開顯)의 사상은 중국에서는 『법화경』을 해석하면서부터 생겨났지만 특히 수(隋)의 천태지의(天台智顗)에 이르러 비로소 방편[權]과 진실[實]이 상즉하는 권실불이(權實不二)의 개현사상이 본격적으로 천명되었다.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법화경』에 본적이문(本迹二門)의 개현이 있다고 했다. 적문(迹門)의 개현이란 『법화경』 전반에 설해진 개권현실과 개삼현일(開三顯一)을 가리킨다. 곧, 법화 이전의 교권(敎權)은 진실한 진리로 인도하는 방편임을 모르고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에게 각각 다른 교(敎)가 있다고 생각하는 집착심을 열어 없애고 방편이 방편이라는 까닭을 밝혀 하나의 진실한 일승의 실교(實敎)를 나타냄으로써 방편이 진실이 되고 모든 교가 하나의 일승에 들어가는 도리를 보인 것을 말한다. 본문(本門)의 개현이란 『법화경』 후반에 설해져 있는 개적현본(開迹顯本)과 개근현원(開近顯遠)을 가리킨다. 석존을 근본의 깨달음[本地]으로 부터 사바세계에 자취를 드리운 수적(垂迹)의 부처로 보는 관점이다. 보리수 아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가야근성(伽耶近成)의 부처라 생각하는 집착심을 열어서 없애고, 석존은 영원한 옛적에 이미 깨달음을 얻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적이문에 걸쳐 권(權)은 방편적이어서 그 가치가 낮고 작고, 실(實)은 진실한 것이어서 그 가치가 높고 크다는 뜻이지만 이것이 법화개현에 의해 권과 실, 적과 본이 하나로 상즉된다는 점에서 개권현실 또는 개추현묘(開麤顯妙)라고 한다. 또 대부분 개권현실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이 때로는 본문(本門)의 개적현본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천태지의는, 개권현실을 화엄·아함·방등·반야의 돈점이교(頓漸二敎)를 열어 비돈비점(非頓非漸)의 실상에 모으는 것이라 하고, 또한 방편적 장통별(藏通別)의 삼교(三敎)를 열어 진실한 원교(圓敎)에 모으는 것이라 하며, 또 지옥 등의 구계(九界)를 열어 불계(佛界)로 모으는 것이라 하고, 또한 성문·연각·보살의 삼승을 열어 일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것을 총괄하여 권(權)의 삼승을 열어서 실(實)의 일승으로 모은다고 한다. 개권현실은 또 폐권입실(廢權立實)이라고도 하고, 또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두 뜻이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교화 받는 근기의 측면이고, 둘째는 설법의 측면이다. 근기에 대하여 해석하면 개(開)는 연다고 하는 의미로서 권법(權法)에 집착하는 미정(迷情)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고, 회(會)는 돌아가는 것인데, 진실법에 귀입(歸入)하는 것을 회라고 한다. 삼승법을 별법(別法)이라 굳게 믿는 미정을 없애버리면, 삼승이 곧 일불승이라 하여 삼승이 그대로 일불승에 귀입하는 것을 개회(開會)라고 한다. 다음에 설법에 대하여 해석하면 부처님이 전사시(前四時)에서 권법을 설해도 권법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권문(權門)을 닫아 버린 것이지만, 지금 법화에 이르러 권법을 권법이라 털어 놓는다. 사실 권법은 실법을 위한 권법이므로 권법을 털어놓을 때 권법은 그대로 실법에 귀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권현실의 권과 실은 일체법에 통하는 것이므로 만약 권법에 집착하는 미정을 없애버리면 진실법이 드러난다. 권법을 권법이라 털어놓는다면 권법은 그대로가 실법인데, 이것을 개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본적이문의 개현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정으로 풀이한다. 먼저 적문의 세 가지 비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이 법을 설하시는데 먼저 방편을 설하신 다음 진실을 설하신다. 이것은 어리석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함으로 마치 연꽃이 연실을 맺게끔 하기 위하여 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둘째, 부처님이 수행이 약간 이루어진 중생에 대하여 방편 속에 포함된 진실의 가르침을 나타낸 것은 마치 연꽃이 피면 동시에 연실이 나타남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셋째,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가 성숙해진 중생들에게 방편교를 없애고 진실교를 가르치는 것은 마치 연꽃이 떨어진 다음 연실이 성숙하여 드러남과 같음에 비유한 것이다. 또 본문의 세 가지 비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성불하셨다고 하나 실은 아득한 옛날에 이미 성불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석가모니 부처님 즉 적불(迹佛)을 나타내어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을 드러내는 것이며, 셋째는 적불을 폐하고 본불을 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