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선이 형성되는 사상적인 근간은 『대반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화엄경(華嚴經)』의 본래불(本來佛), 『유마경(維摩經)』의 직심(直心), 『금강경(金剛經)』의 무주심(無住心), 그 밖의 기타 교리에 근거하여 인간 곧 일체중생의 본성은 부처의 본성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즉심시불의 사상적인 연원은 『화엄경』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셋은 차별이 없다.”[『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9, p.465하], 『관무량수경』의 “이 마음이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대정신수대장경』 12, p.343상], 『대승찬(大乘贊)』의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말을 타고서 말을 찾는 것과 같다.”[『대정신수대장경』 51, p.449중]는 불교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심시불에서 마음[心]은 본래심(本來心) · 청정심(淸淨心) · 무구심(無垢心) · 진심(眞心)의 의미이기 때문에 일반의 번뇌심 내지 중생심과 차별된다. 즉심시불에서 즉심은 본래의 청정한 마음에 계합하는 것인데, 시불은 즉심의 상태가 되어 있는 그것이 바로 부처라는 의미이다. 즉심시불에서 마음[心]은 규봉종밀(圭峰宗密, 주3의 주4에서 말하는 4종심 가운데 진심(眞心)에 해당한다. “무릇 마음[心]에는 간략하게 네 가지가 있다. 그래서 범어도 각각 다르고 그 번역도 역시 다르다. 첫째는 흘리타야(紇利陀耶)로 번역하면 육단심(肉團心)인데, 신체에 들어있는 오장심(五藏心)이다. 둘째는 연려심(緣慮心)으로 번역하면 주5인데,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의 경계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셋째는 질다야(質多耶)로서 번역하면 집기심(集起心)인데, 오직 제팔식만 종자를 축적했다가 작용으로 펼치기 때문이다. 넷째는 건율타야(乾栗陀耶)로 번역하면 견실심(堅實心) 또는 정실심(貞實心)인데 이를테면 진심(眞心)이다.”[『대정신수대장경』 48, p.401하]
즉심시불의 즉심은 『심왕명(心王銘)』의 “근본을 이해하는 것은 마음을 아는 것이다. 마음을 아는 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고 이 부처가 곧 마음이다. (중략) 스스로 자심(自心)을 관찰하면 부처가 안에 있는 줄 알게 되므로 밖을 향해 찾아서는 안 된다. 본래의 마음에 즉한 것이 곧 부처에 즉한 것이고 부처에 즉한 것이 곧 본래의 마음에 즉한 것이다.”[『대정신수대장경』 51, p.457상]는 경우처럼 이미 본래의 청정심과 계합되어 있는 마음에 해당된다. 그래서 일체 중생은 즉심의 상태가 되어야 그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조사선이 가장 번영을 구가하던 당 말기에 즉심시불은 일체 중생의 본래성을 철저하게 긍정했던 조사선의 근본이념으로 크게 강조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즉심시불에 대한 맹목적인 이해가 유행하자, 마조도일(馬祖道一, 주6은 즉심시불이라는 말도 일종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깨워주었다. 마조도일에게 한 승이 “화상께서는 어째서 즉심즉불이라고 설합니까.”라고 묻자, 마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승이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무엇이라고 설합니까.”라고 묻자, 마조는 “비심비불(非心非佛)이다.”라고 말했다.[『대정신수대장경』 51, p.246상] 비심비불은 청정심이 아니면 그것은 부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심시불이 긍정적인 형식으로 제시된 표현이라면, 비심비불은 부정적인 형식으로 제시된 표현일 뿐이지 양자의 이치는 궁극에 다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즉심시불의 의미는 일상의 평상심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평상심은 중생의 삼독심(三毒心)이 아니라 바로 청정심이고 진심이며 본래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즉심시불의 사상은 마조도일 이후로 조사선이 전반에 걸쳐 크게 유행하던 8-9세기 이후에는 더욱 발전하였다. 가령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의 『전심법요(傳心法要)』을 비롯하여 임제의현(臨濟義玄, 주7의 『임제록』에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일체 중생의 본래 청정한 마음을 최대로 긍정하여 모든 사람의 인간성은 부처의 마음과 다름이 없다는 즉심시불 내지 즉심즉불의 사상은 후대에 선종에서 주8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주9에서는 “마조도일에게 대매법상(大梅法常)이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즉심시불이다.”[『대정신수대장경』 48, p.296하] 즉심시불은 조사선의 근본적인 이념 가운데 하나로서 평상심시도 및 대기대용(大機大用)의 개념과 함께 선종의 근본적인 사상으로 정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즉심시불의 선사상은 9세기 초반에 도의 국사(道義國師, 주10에 의하여 “분별망념이 없고 깨침을 추구한다는 분별의 수행도 없어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게 믿고 이해하며 수행하고 깨칠 따름입니다. 그래서 조사선의 가풍에서는 부처와 중생이라는 구별을 두지 않고 깨침의 본래성을 곧바로 드러낼 뿐입니다.”〔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6, p.478하〕라는 조사선풍으로 전승되었다.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은 『수심결』에서 수심의 근거로서 “만약 공적영지의 마음을 깨달으면 진실로 단계를 거치치 않고 곧바로 주11에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초월하고 귀가하여 온전하게 의심을 단제한다고 말한다.”고 영지(靈知)의 개념으로 활용하였다. 이후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선문염송』에서 널리 활용하였고, 조선시대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선문수경(禪文手鏡)』, 그리고 기타 근현대의 불교 잡지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선사들의 법어로 널리 회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