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입명은 안신과 입명의 결합어이다. 안신은 몸을 평안히 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이고, 입명은 불교 문헌에서 기본적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지금 이 용어의 쓰임은 주1의 말을 차용한 것이다. 이 두 단어가 합해진 안신입명은 몸과 마음이 평안하여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안신은 불교 문헌에서 넓은 외연을 가지고 사용된다.
첫째, 안신은 윤리적인 삶, 즉 계(戒)를 지키고 선(善)을 실천함으로써 얻어지는 신체적 안전과 편안이다. 주2에서는 계를 지키지 않으면 악행이 날로 늘어나고 이것이 몸을 위태롭게 한다고 말하면서, 선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몸을 편안히 하는 방법이라고 설하고 있다[악행위신 우이위이 선최안신 우이위난(惡行危身 愚以爲易 善最安身 愚以爲難)]. 또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는 계율이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좋은 스승[善知識]이며, 공덕을 쌓는 첫째 문이라고 설명한다.
둘째, 안신은 마음의 평안함을 포함한다. 『법구경』의 “지혜가 가장 몸을 편안하게 하고, 악을 범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평안이다[지혜최안신 불범악최안(智慧最安身 不犯惡最安)]”라는 구절은 선악의 행위에 각기 상응하는 과보가 있음을 아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안신은 단순히 몸의 안전을 넘어서, 악행이 괴로움을 초래하며 선행이 평안으로 이어진다는 업보(業報) 이론의 핵심 명제인 ‘선인락과 악인고과(善因樂果 惡因苦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안신은 신체적 안전에 더하여 마음의 평안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셋째, 안신은 주3 뿐만 아니라 다른 수행에 의해서도 얻어진다. 인욕의 여러 이익 중에 안신[주야상안신(晝夜常安身)]이 포함되며[『법화문구』], 또한 안신은 선정을 통해 얻는 효과[선정유연가이안신(禪定柔軟可以安身)]이기도 하다[『법화의소』].
넷째, 안신은 열반과 같은 궁극적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반열반경』에서는 “또한 이런 생각을 내지 말라. ‘내가 법을 듣고 먼저 나 자신을 건너게 한 후에 다른 이를 건너게 하리라. 먼저 나 자신을 해탈시킨 후에 다른 이를 해탈시키리라. 먼저 나 자신을 편안하게 한 후에 다른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선자안신연후안인(先自安身然後安人)]. 먼저 내가 열반에 든 후에 다른 이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리라.’”라고 하여, 안신을 해탈 및 열반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안신은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통해 얻게 되는 몸의 안전과 마음의 평안을 뜻하며, 때로는 궁극의 경지를 의미하는 등 폭넓게 사용된다.
안신에 입명이 더해진 안신입명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평온하여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특히 선종 계통의 문헌에서 견성(見性)과 같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는 안신의 네 번째 양상과 연결될 수 있으나, 입명이 불교 일반의 생명의 유지가 아닌 흔들림 없는 경지라는 뜻으로 사용된 데에는 『논어』의 '지천명(知天命)'이나 『맹자』의 ‘입명(立命)’ 관념 등 유가의 영향이 고려된다.
분양선소(汾陽善昭)가 “하늘도 덮을 수가 없고 땅도 실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만 안신입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궁극적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측면을 표현하고 있다[『분양무덕선사어록(汾陽無德禪師語錄)』]. 보조 지눌은 안신입명의 도리를 본래의 진심(眞心)으로 간주하여 “모든 대지가 곧 사문이 갖고 있는 하나의 바른 눈이고, 모든 대지가 곧 가람이며, 모든 대지가 곧 도리를 깨달은 사람의 안신입명의 자리[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이다. 진심을 깨달으면 주4가 일시에 사라지고, 산하대지가 모두 진심이 된다[『진심직설(眞心直說)』].”고 말하였다. 여기서의 안신입명은 깨달음이 성취된 상태의 측면을 밝히는 것이다.
안신의 심리적 측면은 안심(安心)과 연결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안신입명은 안심입명(安心立命)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