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2년 10월부터 1936년 중반경까지 중국공산당이 내부의 민생단 조직원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조선인 집단 살해 사건.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반민생단 투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렇다고 체포된 사람 가운데 민생단원이라는 증거가 발견된 경우는 없었다. 오로지 강박에 의해 나온 진술에 의지할 뿐이었고, 일치한 진술을 찾기도 어려웠다. 근거 없는 반민생단 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면 될수록 조선인 조직원의 희생은 늘어갔다. 일본과의 유격 투쟁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보다 반민생단 투쟁의 와중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이 더 많았다. 1931년 하반기에 당원이 1100명 정도였는데, 1935년 5월에 이르면 당원이 181명에 불과할 정도로 동만특별위원회의 세력이 급격히 줄어들어 조직의 체계가 무너졌다.
반민생단 투쟁은 민생단원이 파쟁주의자요, 민족주의자이며, 일본의 밀정이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오랜 기간 동안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반민생단투쟁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보기에 한인 민족주의자들은 3·1운동과 1920년의 경신참변 이후 분화되었으며, 이 가운데 투항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모자를 바꿔 쓰고 가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은 원래 일반적으로 자본가 지주 혹은 부농 출신이어서 농후한 봉건성과 지역 관념을 갖고 있는 파쟁주의자였다. 파쟁주의자는 민생단의 조수이고, 일본이 혁명 대오에 진격해 들어올 수 있는 중계자이자 밀정이었다. 게다가 반민생단 투쟁을 밀어붙이던 사람들이 보기에 민족주의자들의 민족운동에 대한 각성이 그다지 높지 못하고 계몽적인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무산계급의 기초가 허약하고 투쟁도 발전하지 못하였다.
결과 및 의의
참고문헌
- 『중국지역 민족운동사』(신주백, 선인, 2005)
-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신주백, 아세아문화사, 1999)
- 『1930년대 연변 민생단사건연구』(김성호, 백산자료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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