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운곡리 고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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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운곡리 고분군 전경
의령 운곡리 고분군 전경
선사문화
유적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 구덩식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정의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 구덩식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의령운곡리고분은 해발 199.6m의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자락의 끝부분에 분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남강이 흘러 낙동강에 이른다. 고분이 분포하는 끝자락에 주택건립이 추진됨에 따라 1998년 1월 12일부터 2월 13일까지 고분군 중 일부를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횡혈식석실묘 2기, 수혈식석곽묘 1기, 목곽묘 1기를 확인하였다. 뿐만아니라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봉분의 지름이 5m 전후인 소형분과 10m 전후인 중형 봉토분 26기를 확인하였다.

내용

1호분은 양수식 횡혈식석실묘로서 이 지역 고분 중 비교적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다. 석실의 평면형태가 "절단주형(切端舟形)"이면서 후벽쪽에 만들어진 선반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횡혈식석실묘에서 찾아볼 수 없다. 삼국시대 횡혈식석실묘의 평면형태는 일반적으로 네 변이 직선을 이루는 장방형이거나 방형이다. 1호분의 평면형태는 양장벽이 다소 팽창된 절단주형으로 일본에서 많이 조사되었다. 시상대는 1, 2호분 모두 30㎝가 넘는 고시상(高屍床)이며, 신라후기 양식의 토기들이 집중적으로 부장되었다. 여기에 고령양식 토기와 서부경남의 가야후기에 속하는 토기가 소수 포함되어 있다. 기종은 유·무개식의 고배와 개, 단경호, 장경호, 대부장경호, 대부호, 컵형토기, 완, 발 등으로 비교적 단순하다. 철기는 대도, 도자, 촉, 착, 부, 겸, 꺾쇠, 관정, 관고리 등이 출토되었다.

운곡리고분의 2차 발굴조사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2005년 8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이루어졌다. 운곡리고분에 대한 보존관리와 성격규명을 위한 연차적인 조사 계획에 따라 북서쪽에 위치한 21호분과 22호분을 발굴조사하였다. 당시 2기의 봉토분만 파악되었으나 조사과정에서 중복된 다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22호분은 28호분과 29호분이 중복된 상태였으며, 21호분 주변에서 27호분 석실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운곡리고분은 1차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의 범위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다량의 봉토분이 존재하며, 곡부를 지나 반대편 구릉에도 유구가 밀집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굴조사 결과 횡혈식석실묘 5기, 배장곽 8기를 확인하였다.

1·2호분은 구릉사면의 동쪽, 21·22호분은 서쪽에 위치한다. 봉토는 지름 15m 내외이며, 점성이 강한 점질토를 주로 사용하였고 지형이 낮은 쪽은 성토를 한 경우가 많다. 석실은 반지상식이며, 대부분 주구를 돌렸다. 호석은 특별히 설치되지 않았고 21호분과 22호분 봉토의 낮은 경사면에 할석을 쌓았다. 묘실(墓室)의 평면형태는 22호분이 정방형에 가깝고 대부분은 장방형이다. 묘실의 규모는 길이 236~270㎝, 너비 135~190㎝, 높이 230㎝ 정도이다. 시상대는 연도 길이 180㎝, 너비 80㎝, 높이 140㎝, 묘도는 길이 130㎝, 너비 150㎝ 정도이다. 좌·우편수는 추가로 설치된 시상대가 없으나 양수식인 1호분과 22호분은 후벽과 측벽을 이용하여 추가하고 있다.

22·28호분에는 문지방석이 설치되어 있다. 연도부 폐쇄는 석재를 쌓은 후 후미에서 대형 판석을 세워 마무리 하였다. 또한 22, 27, 28호분에 설치된 배수로는 묘실에서 시작되어 연도 아래를 지나 묘도 바깥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이러한 형태는 1호분 배수로와 동일하다. 유물은 단각고배, 부가구연대부장경호, 대부완, 병, 단경호, 철촉, 철겸, 철부 등이 부장되었다. 그리고 관정이나 관고리 등이 확인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의의와 평가

의령운곡리고분은 동쪽에 위치한 1호분이 가장 이른 시기이며, 2차 조사의 여러 고분들은 이보다 늦은 시기에 축조되었다. 따라서 운곡리고분은 구릉 사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조영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가야세력의 진출과 함께 축조되기 시작한 고분으로 신라세력이 진출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이는 운곡리집단이 의령지역의 새로운 수장층으로 등장했음을 뜻한다. 운곡리 1호분과 인근의 경산리 1호분은 가야석실에 왜계석실의 영향이 반영되었으며, 신라후기 양식의 토기들이 집중적으로 부장되었기 때문에 신라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의 멸망과 신라의 영역확장에 수반된 운곡리집단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의령 운곡리유적』(하승철 외,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7)
『의령 운곡리고분군』(조영제 외, 경상대학교박물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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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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