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 도미전(都彌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백제 개로왕(455~475)이 도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도미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한 후 배에 실어 띄워 보냈고, 이후 도미 아내가 도망하여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 도미를 만났다고 한다. 천성이라는 지명이 확인되는 것은 5세기 중엽이며, 천성은 대체로 한강 하구에 위치한 지금의 오두산성(烏頭山城)으로 비정된다. 오두산성은 원래 오도산성(烏島山城)이라 불리었는데, 오도(烏島) 즉 까마귀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이 일대의 옛 지명이 천정구(泉井口)였다.
김정호(金正浩)가 작성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오두산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오두산성을 백제의 관미성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두산성의 위치가 전략적으로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당전쟁 당시 신라와 당은 주로 임진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당군은 신라의 임진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지는 오두산성 즉 천성을 전격적으로 공격하였다. 675년 9월 당의 장수 설인귀(薛仁貴)는 숙위학생 김풍훈(金風訓)을 길잡이로 삼아 천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장수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1,400명을 목베었으며, 병선 40척을 빼앗았다. 설인귀는 포위를 풀고 달아났으며, 이 과정에서 말 1,000필을 노획하였다.
천성전투는 곧이어 발생한 매소성(買肖城)전투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매소성전투는 나당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었던 전투로, 여기에서 당군이 패하면서 신라가 승기를 잡게 되었다. 매소성전투의 전초전으로서, 천성전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