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558년 2월 나마 신득(身得)이 포노를 만들어 바치니 그것을 국원성(國原城 : 충청북도 충주시) 위에 설치하였다. 포노에 대해서는 포(砲)와 노(弩)로 구분해서 보는 견해, 여러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다발식 활로 보는 견해, 중국의 상노(床弩)와 같은 대형 수성용 노라는 견해 등이 나와 있다.
성 위에 설치한 것으로 보아 수성용 대형 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신득이 만들어 바친 점에서 신라의 대형 노 제작기술이 이미 상당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 신라는 나당전쟁을 전후하여 1,000보까지 발사할 수 있는 천보노(千步弩)를 제작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신라는 노를 주력무기로 특화시켜 변경을 방어하게 하고, 국왕이 참관하는 열병식에 참가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