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중반 이후 신라와 고구려는 소백산맥의 죽령(竹嶺)과 계립령(鷄立嶺)을 기점으로 서로 대치했다.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계립령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를 잇는 고개이다.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공략한 이후, 신라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했다. 481년 3월 고구려는 말갈군과 함께 신라의 북변을 침입했다. 호명성 등 7성을 점령하고, 미질부(彌秩夫: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면)까지 남하하였다.
당시 고구려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봉화-예안-진보(청송)-영해-영덕-흥해 방면으로 진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질부가 위치했던 흥해는 경주 바로 북쪽이므로 신라의 수도가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신라는 백제와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방어하였다. 고구려군이 패하여 물러나자 이를 추격하여 1,000여 명을 목베었다. 호명성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호명산(虎鳴山)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