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성

  • 역사
  • 지명
  • 삼국
삼국시대의 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7년
  • 이상훈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의 성.

내용

5세기 중반 이후 신라와 고구려는 소백산맥의 죽령(竹嶺)과 계립령(鷄立嶺)을 기점으로 서로 대치했다.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계립령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를 잇는 고개이다.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공략한 이후, 신라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했다. 481년 3월 고구려는 말갈군과 함께 신라의 북변을 침입했다. 호명성 등 7성을 점령하고, 미질부(彌秩夫: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면)까지 남하하였다.

당시 고구려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봉화-예안-진보(청송)-영해-영덕-흥해 방면으로 진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질부가 위치했던 흥해는 경주 바로 북쪽이므로 신라의 수도가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신라는 백제와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방어하였다. 고구려군이 패하여 물러나자 이를 추격하여 1,000여 명을 목베었다. 호명성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호명산(虎鳴山)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4~5세기 고구려의 남방진출과 대신라 관계」(장창은, 『고구려발해연구』 44, 201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